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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영화 감상究/전쟁역사 그리고...

北 탱크를 부순 조작된 '호국 영웅', 이제 바로 잡아야 한다.

by 하승범 2016. 6. 18.


1950년 6월 25일 6.25 전쟁이 발발하자 심일 소위(1923년 6월 5일 ~ 1951년 1월 26일, 육사 8기)가 소속된 제6보병사단(청성부대, 'Blue Star', 1948년 11월 20일 창설) 정면에는 공격 당일 춘천 점령의 임무를 부여받은 북한군 2군단 예하 2사단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남하하는 북한군의 SU-76 자주포가 아군의 대전차포를 맞고도 포탄을 쏘아대며 계속 전진해오자 5명의 특공대를 편성해 수류탄과 화염병을 들고 적의 포탑 위로 돌진하는 육탄공격을 감행한 끝에 북한군 자주포 3대를 격파하는 전공을 거두었습니다.

이후도 충북 음성, 경북 영천 등지의 전투에서도 참전했다가 1951년 1월 26일 제7사단 수색중대장으로 있던 중 강원도 영월에서 북한군과 교전 중 총에 맞아 전사했습니다.  정부에서는 이와 같은 공적을 기려 1951년 10월 위관급 장교로는 최초로 태극무공훈장과 함께 1계급 특진(소령) 추서 하였습니다. [출처 : 국가보훈처 블로그]


그러나 춘천 및 홍천 전투 당시 7연대 1대대 1중대장으로 당시 전투를 목격했던 이대용 전 주월공사는 심일의 전공이 사후 거짓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폭로했다


춘천 전투(1950년 6월 25일 ~ 6월 30일)에서 심일 소대장은 육탄 돌격이 아니라 도망을 갔다. 나는 바로 위 고지에서 그 상황을 볼 수 있었다. 중과부적이었다. 하지만 대전차포 1문을 적(敵)에게 넘겨주고 달아난 것은 문제가 됐다. 그의 중대장은 격노해 '총살감'이라며 상부에 보고했다. 

심일은 보직 해임됐고, 뒤에 한직(閑職)인 포병 연락장교를 맡았다. 국군이 북진했다가 중공군의 개입으로 퇴각할 때는 그 속에 있었다. 1951년 1월 26일 그는 다른 장교 1명, 사병 3명과 함께 묘향산 화전민 움막에 숨어들었다. 하지만 중공군에게 바로 포위됐다. 그는 사병 한 명과 함께 뒷문으로 뛰어나가다 총에 맞아 숨졌다 [北 탱크를 부순 '호국 영웅'의 불편한 진실 - 조선일보 2016년 6월 17일]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군인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난다. 모든 군인이 처음부터 영웅이지는 않는다. 포탄과 총알이 빗발치는 공간에서 의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한 전투가 계속되고 익숙해지며 점차 전사로 거듭난다. 그래서 진짜 전쟁영웅은 존경받을 충분한 가치가 있다. 따라서 조작된 가짜 전쟁영웅은 절대 없어야 한다. () 


춘천-홍천전투 (춘천대첩, 춘천지구전투)은 한국전쟁 발발 초기인 1950년 6월 25일부터 6월 30일까지 강원도 춘천, 춘성, 홍천, 인제 일대에서 한국군 제6보병사단(대령 김종오)와 북한군 제2군단(중장 김광협)이 벌인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한국군이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함으로써 서부전선의 한국군이 철수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고 서울에서 북한군이 3일간 진격을 멈추게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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