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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

갈리폴리 (Gallipoli) 1981년 호주

by 하승범 2006. 12. 23.

갈리폴리 (Gallipoli) 1981년 호주

호주의 대표적인 감독인 피터 와이어의 작품으로 두 젊은이들의 순수함을 그린 감동적인 전쟁 역사 영화. 제1차 대전의 역사적 배경으로, 자신의 나라인 호주군에 입대한 두 젊은이가 갈리폴리 전투와 죽음의 과정을 통해 두 젊은이의 우정을 감동적으로 그렸다.

전쟁 영화인 만큼 전쟁의 긴박감과 팽팽한 긴장감이 있는 분위기 속에 강렬하면서도 아름다운 화면이 인상적이다. 특히 여타 전쟁 영화들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비극적인 라스트 씬은 강렬한 인상과 안타까움의 긴 여운을 남긴다.

이 영화를 감독한 '피터 위어 (Peter Weir)'는 앞서 '위트니스(Witness, 1985)','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 1989)',그린 카드(Green Card, 1990)','트루먼 쇼(The Truman Show, 1998)','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Master And Commander, 2003)' 등을 연출하여 우리에게 많은 작품을 선보였다...

감독 : 피터 위어 (Peter Weir)
출연 : 멜 깁슨 (Mel Gibson), 마크 리 (Mark Lee), 빌 헌터 (Bill Hunter), 로버트 그럽 (Robert Grubb), 빌 커 (Bill Kerr), 존 모리스 (John Morris), 해롤드 홉킨스 (Harold Hopkins), 팀 맥켄지 (Tim McKenzie), 데이빗 아궤 (David Argue), 해롤드 베이젠트 (Harold Baigent)

호주의 광활한 오지와 거대하고 장엄한 이집트의 아름다운 풍광을 통해 전쟁의 허망함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은 자주국가를 선언했음에도 모국인 영국을 위해, 여왕을 위해, 전쟁에 참가한 수많은 호주 젊은이들이 아깝게 목숨을 잃었던 실제 사건을 그린 영화로 지휘를 맡은 영국군보다 호주군의 사상자가 훨씬 많았고, 이러한 반영 감정은 영화 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병사들이 갈리폴리 반도에 상륙한 날을 기리며 해마다 4월 15일이면 성대한 행사를 벌이고 있다.

이 영화에서의 멜 깁슨의 모습은 액션 영화에서와는 완전히 다르며 젊은이의 순수함을 아주 잘 연기하고 있다. 전쟁이란 결코 <람보>나 <탑 건>같은 용맹무쌍함과 통쾌함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그 이면에 깔린 무고한 생명의 희생, 값진 피가 헛되이 소모되는 무모한 행위라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다시한번 절실히 느낄수 있다. (네이버/홍성진 영화 해설)

1914년 8월,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터키는 처음의 중립정책을 포기하고 흑해의 러시아 항구를

공격했고 이에 영국, 프랑스, 러시아 연합국은 즉시 터키에 선전포고를 한다.

당시 영국의 해군장관이었던 윈스턴 처칠은 영국정부에 전함으로 콘스탄티노플을 폭격해 터키를 굴복시킬 계획을 입안하여 추진한다.  이것이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갈리폴리 전투(Gallipoli, 다다넬스 전역)"이다..

갈리폴리(Gallipoli)는 다르다넬스 해협의 동쪽 끝에 있는 터키 서부의 항구로 제1차대전 당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당시 연합군으로서는 다르다넬스와 보스포러스 해협의 주도권장악과 콘스탄티노플 점령, 그리고 러시아로 연결되는 흑해의 해상로를 열기 위한 아주 중요한 전투였다

갈리폴리 반도를 침공하는 영국 해군은 당시 세계 최강의 전함으로 알려진 퀸 엘리자베스를 기함으로 하여 드래드노트(Dreadnaught)급 신형 전함 22척을 동원하여 단숨에 노쇠한 터키를 제압하려고 했다.  위풍당당하게 다르다넬스 해협에 도착한 영국군은 작전 초반부터 예상치 못했던 터키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다. 어려움에 봉착하자 갈리폴리에 대한 수륙양동작전을 통해 이 난관을 돌파하려고 했다.
 
그런 계획 하에 투입된 앤잭(ANZAC)군과 영국군은 비좁은 상륙지점에 잘못 상륙하는 등 계속된 불운과 무능한 지휘관의 작전으로 많은 사상자를 내며 8개월동안 고립되어 있어야 했다. 이 작전은 1915년 8월 다르다넬스 해협 작전에 투입된 12척의 연함군 전함 중 3척이 침몰하며  취소된다. 

터키군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 전선에서 사용된 전술, 지긋지긋한 참호전을 펼치고 있었고, 호주군을 포함한 영국군은 악명높은 돌격 전술을 반복하고 있었다. 결국 1915년 8월초 영국군은 이스탄불에서 좀더 가까운 수블라만을 상륙지점으로 하는 새로운 작전을 구상하게 된다. 이때 터키군이 이들이 상륙할 수블라만에 대해 신경쓰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교란 작전을 펼치도록 했다.

영국군 최고사령부는 호주와 뉴질랜드 군에게 앤잭 코브(ANZAC(Austrailian & New Zealand Army Corps) Cove)에 대한 정면 공격을 명령한다. 호주 제10경기병대는 물론 정예부대였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자살행위와 같은 것이었다. 이들의 작전이란 참호를 기어올라 터키군이 겨냥하고 있는 기관총을 향해 무인지대를 통과하여 돌격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희망이 있다면 정확히 오후 4시 30분에 있기로 한 맹렬한 포격뿐이었다. 포격이 있는 동안 터키군은 참호 속에서 머리를 못 들테니 그 사이에 참호를 뛰쳐나가 적진 가까이 달려나가야 했다. 그러나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4시 30분에 있기로 한 포격이 23분부터 시작되었고, 그 포격조차 터키군 진지를 향해 이루어지지 못했다. 7분간의 정적이 흐르고 포격은 오히려 호주군의 작전 계획을 적에게 노출한 셈이 되고 말았다.  호주군은 예정대로 4시 30분에 공격 제1진을 참호 위로 올려 보냈다. 터키군은 조용히 참호에 앉아 참호를 기어오르는 호주군 병사들을 쏘아 죽이기만 하면 됐다. 그후로도 2분 간격으로 3차례나 공격을 시도했지만 호주군은 참호 위로 올라서기가 무섭게 학살당했다. 단 10분만에 호주군은 전 병력의 90%를 잃었다.
 
이렇게 "갈리폴리(Gallipoli) - ANZAC의 묘지"가 되었다... 약 9개월간 진행된 갈리폴리 전투로 양쪽은 각각 25만명의 사상자를 냈다.. 특히 호주군은 26,094명의 사상자를 냈다.

현재 호주와 뉴질랜드는 터키의 갈리폴리반도에서 다르다넬스해협의 주도권을 두고 벌어진 '갈리폴리 전투'에서 상당한 패해를 입은 '앤잭(ANZAC - Australian and New Zealand Army Corps,호주·뉴질랜드 연합군)군'을 추모하기 위하여 "앤잭 데이(Anzac day, 4월 25일)"을 지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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