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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영화話

선동 혹은 고발하는 전쟁영화들을 보며 전쟁중독을 생각하다

by 하승범 2008. 1. 10.

전쟁이란 광풍은 우리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흔든다. 전쟁은 인간관계를 파괴하면서 어제까지의 친구를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눈다. 아울러 폭력에 중독된 인간들을 만들어낸다.

인간은 전쟁이 자아내는 폭력을 두려워하지만, 전쟁을 실제로 체험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과연 전쟁이 어떠한 것일까에 강한 호기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전쟁영화를 본다. 전세계를 통틀어 지금껏 상영된 전쟁영화는 3500개쯤. 그 가운데 상당수는 국가정책적 필요에 따라 그럴듯한 애국 논리로 젊은이들을 전선으로 내몰기 위해 만들어졌다.

반전평화 메시지를 담은 독립적인 전쟁영화들도 물론 있다. 전쟁 자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그런 영화들 속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실제로 있을 법한 갖가지 인간 유형들을 보여준다.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주의자, 전쟁이 터지기만을 바라는 무기 상인, 전선의 참호 속에서 죽음의 공포에 질려 머리를 감싸고 흐느끼는 앳된 병사, “무조건 돌격 앞으로”를 외치는 무책임한 사령관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미국이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도 없이 국제법을 위반하며 이라크를 침공한 뒤 5개월째인 2003년 8월, 미국 워싱턴 펜타곤(국방부 청사)에서 상영됐던 영화가 하나 있다. 제목은 <알제리 전투>. 이탈리아 영화감독 질로 폰테코르보의 작품으로,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에서 8년(1954~62년) 동안 벌어졌던 알제리 독립전쟁을 다뤘다(1966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펜타곤의 특수작전국 고급장교들이 함께 <알제리 전투>를 본 까닭은 이라크의 반미 저항세력들을 분쇄하기 위한 전술전략의 힌트를 얻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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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알제리 전투>에서는 알제리 저항요원들을 붙잡아 온갖 고문 끝에 비밀조직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는 장면들이 나온다. 전기고문, 물고문, 불고문(피의자를 발가벗겨 가스불로 지지는 고문), 꽁꽁 묶인 사람을 공중에 매다는 ‘통닭구이’ 고문이 저질러진다.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이라크 포로들이 학대를 당한 것도 이와 관련이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

영화 속에서 알제리 게릴라들을 고문하는 프랑스 병사들이나 아부그라이브 감옥에서 이라크 포로들을 고문하는 미군 병사들의 공통점은? 정보를 끄집어낸다는 구실로 국가폭력의 성격을 지닌 악랄한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이다.

따지고 보면, 고문하는 쪽이나 고문당하는 쪽이나 모두 제국주의적 전쟁의 광풍에 휩쓸린 희생양들이 아닐까 싶다.

가해자는? 전쟁으로 한몫 챙기겠다는 잘못된 욕심을 지닌 정치인, 무기 제조업자들과 판매상(‘죽음의 상인’), 군부 지도자들로 이뤄진 ‘군·산·정 복합체’다.

전쟁은 각기 나름의 야욕을 지닌 정치인, 사령관, 기업인, 언론 나팔수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괴물이다. 그 괴물은 영화 <서부전선 이상 없다>(1930)의 주인공 파울 보이머의 학교 선생처럼 젊은이들을 ‘애국’ 논리로 꼬드겨 전선으로 떠민다.

전쟁영화는 아니지만,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뱀파이어를 다룬 영화 <중독>(The Addiction·1995)은 국가폭력을 생각하는 데 매우 시사적인 영화다. 철학과 박사과정에 다니는 여주인공 캐슬린(릴리 테일러)은 어느 날 뉴욕의 길을 걷다가 여자 뱀파이어에게 목덜미를 물린 뒤 다른 사람들의 피를 빠는 뱀파이어로 바뀐다. 말하자면 피에 중독된다. 캐슬린은 그 피의 중독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지만 쉽지 않다.

영화 <중독>의 첫 대목은 매우 인상적이다. 1968년 베트남전쟁에서 어린이와 임신한 부인들을 포함한 베트남 민간인 504명을 미군들이 마구 학살한 ‘밀라이 학살’ 관련 재판을 보여준다. 친구와 함께 그 모습을 본 여주인공 캐슬린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

캐슬린: 국가적인 죄악을 어떻게 한 개인(밀라이 학살 사건으로 기소된 윌리암 켈리 중위)에게 묻지?

친구: 국가를 감옥에 넣을 수 없으니 운 없는 희생양이 대신한 거지.

캐슬린: 운의 문제가 아니야. 그에게 총을 쥐어준 게 누군데? 폭탄을 퍼부어 어린아이와 여성들을 학살한 국가는 어떻게 되는 거야? 그 죄는 누구에게 묻지?

친구: 인간은 불완전한 방식으로나마 정당성을 추구하거든.

캐슬린: 정당성을 추구하는 인간이 전쟁범죄의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겨?

일단 인간이 전쟁이란 폭력에 중독되면, 전쟁범죄를 저질러도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지난 5년 사이에 이라크에선 밀라이 학살’의 중동판 전쟁범죄들이 벌어졌다. 폭력에 중독된 일부 미군들의 전쟁범죄 행위다. 그런 미군 병사들도 따지고 보면 국가폭력에 중독된 희생양이다. 크고 작은 잔혹 행위를 일상적으로 저지르다가 어느 날 그 전쟁범죄가 언론에 노출되면? 군법회의라는 요식행위를 거쳐 용도폐기될 뿐이다.

이렇듯 전쟁은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고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부순다. 생각이 깊은 전쟁영화 감독들이 전쟁의 비극성·몰인간성을 고발함으로써 나름의 반전 메시지를 담아내는 것도 인류가 미치광이 같은 전쟁의 광기에 빠지지 말자는 뜻에서일 것이다.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성공회대 겸임교수 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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