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01 22:23

장사상륙작전을 아십니까


오늘 우연히 '장사상륙작전'을 다룬 MBC 특집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나름 많은 전사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상륙작전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보유하고 있는 '한민족전쟁사 (War History of Korea, 저자; 온창일, 집문당刊)'가 한국전쟁사를 비교적 상세히 기록하고 있는데도 이 작전에 대한 기록은 없다.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한 양공작전으로 포항 북쪽 30여Km 지점에 위치한 경북 영덕 장사해안에서의 상륙작전을 기획한다. 

1950년 8월 24일 대구와 밀양지역에서 모집한 학도병 772명에 대해 기초군사훈련을 시킨 후 1950년 9월 13일 부산부두에서 LST문산호에 탑승하여 9월 14일 새벽 4시 30분경 영덕 장사해안에 도착한다.  태풍 '케이지'의 영향으로 LST문산화가 좌초되는 악전고투끝에 상륙에 성공하여 북한군 주보급로인 포항-영천방면 국도를 차단하고 적군후방활동을 마비시켜 북한군 2군단 2개 연대 북상공격을 격퇴하는 전과를 올린다.

이 작전에 참여한 학도병 139명이 전사하고 92명이 부상을 당했고 현재는 약 37명이 생존하고 있다.


이 작전은 육군본부 직할 독립 제1유격대대 (대대장 이명흠대위, 대대장의 이름을 따서 '명부대'라 불린다)는 1950년 9월 12일 육군본부 강문봉 작전국장(대령)으로 부터 "포항지역에서 공세를 벌이는 북한군 제2군단을 견제하고 약화시키기 위해 적 후방 장사동에 상륙하여 보급로를 차단하고 그곳을 거점으로 유격활동을 전개하라"는 작전계획을 지시받고 1950년 9월 10일부로 발행된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174호 작전명령서를 받는다.


당시 동해안 포항지역은 미 8군 예하 한국군 1군단 3사단이 담당하고 있었다.  북한군은 같은 지역에 2군단 5사단과 12사단이 공세를 취하고 있었다

출동일자 1950년 9월 13일, 작전기간 9월 14일 ~ 9월 16일까지 3일간.  육군본부 직할 독립 제1유격대대는 학도병으로 구성된 대원 772명, 지원요원 56명과 함께 부산에서 2,700톤급 LST문산호(선장 황재중)에 탑승하고 장사해안으로 향한다.  그러나 태풍 캐지아호의 영향으로 장사해안에 도착하기 직전 LST문산호가 좌초된다.

해안에서 멀리 떨어져 좌초된 LST문산호가 북한군의 공격을 받자 제1중대가 급하게 상륙을 시도하다 대부분 물에 빠져 전사한다.  7명의 대원이 해안에 겨우 도착하여 설치한 밧줄을 타고 어렵게 해안에 상륙을 한다.  이 과정에서만 60여명의 대원들이 전사하고 90여명이 부상을 당한다. 

당초 16일까지 계획된 작전은 18일까지 계속되었고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19일에 철수한다.  철수과정에서 북한군의 집요한 공격으로 철수함정 LST조치원호가 위험해지자 미군 고문관의 재촉으로 약30여명의 대원들을 해안에 버려두고 떠나야 했다.

이 작전의 의미는 학도병으로 구성되어 결코 성공을 기대하지 않았던 상륙작전이지만 북한군을 상대로 기만작전을 성공적으로 펼쳐 인천상륙작전(Op Chromite 100-B)이 성공할 수 있는 양공작전의 역할을 해냈다는 것이다.(2009-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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