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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영화 감상究/전쟁역사 그리고...

1914년 크리스마스 휴전에 대하여

by 하승범 2007. 3. 2.
1914년 크리스마스 휴전이 실재로 벌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전쟁 첫해의 5달동안의 전쟁중에 단 몇시간동안 이루어진 휴전은 많은 이들에게 전쟁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해줄 것이다.

이 크리스마스 휴전의 대부분은 주로 벨기에 이프르전선에서 독일군과 영국군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서부전선의 많은 부분에서도 이러한 일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벨기에군과 프랑스군 구역에서도 그들의 적인 독일군과의 평화로운 휴전이 몇시간동안 계속되었다는 것이 관찰된 것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많은 독일인들은 그들의 전통방식대로 양초와 트리앞에서 캐롤을 부르면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고 있었다. 그외에도 서부전선의 참호안 많은 병사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있었다. 갑자기 독일군 진영에서의 사격이 중지 되었고 이는 영국군 지휘부에 전달되었다. 그리고 독일군들은 캐롤을 부르기 시작하였다.

양측간의 간격이 매우 짧았던 구간에선 영국군 지역에서도 그 목소리를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독일군들은 '토미'(영국인들을 부르는 별칭)하며 영국군 진영으로 부르기 시작하였고 영국군들도 '프릿츠'(독일인들을 흔히 부르는 말) 라 하며 독일군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며 무인지대로 걸어나오기 시작했다. 이곳은 수시간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무인지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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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헐스(영국군 스코틀랜드 연대 중위)는 그의 일기장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독일군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독일 정찰대와 만나 위스키와 담배를 교환하였다. 어떤 적대적인 행위도 벌어지지 않았다."

이 사실은 곧 연합국과 독일군의 전 전선에 알려지게 되었다. 곧 새로운 형태의 휴전들이 서부전선 전체에 걸처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는 병사들간에 이루어진 그들만의 암묵적인 계약이었다. 물론 그전에도 양측의 지휘관들 서아애 가끔 암묵적인 휴전이 이루어지곤 했다. 양지휘관들은 참호앞에 나와 서로 마주본후 무인지대에 있는 자기측 병사들의 시체를 회수해  이를 매장하는 행사를 가지게 된 것이었다. 이동안 모든 사격은 중단되었고 병사들은 이를 장례축제라고 불렀다.

또한 이 동안 양측의 군사들은 담배를 교환하기도 하고 서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또 적진 뒤에 있는 자신의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편지나 선물을 보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따라서 많은 병사들이 이 장례파티를 기다리곤 했다.

하지만 이번 크리스마스 휴전은 병사들간에 이루어졌으며 크리스마스때 휴전을 갖지 못한 많은 지역에서 크리스마스대신 새해첫날 휴전을 가지기도 했다. 심지어는 독일군과 프랑스군 사이에 축구경기가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양측의 지휘부에서는 이 소식들을 보고받고 크게 분노하였으며 이를 엄격히 중지하도록 명령했다. 영국의 최고사령관 존 프렌치경은 크리스마스의 헤이한 분위기에 독일군의 대규모 작전이 있을 것을 염려해 크리스마스에 경계를 강화하도록 명령하였다. 또 각 단위부대 지휘관들에게 최고의 경계태세를 취하도록 주문하였다.

로마 교황청에서는 크리스마스동안 전투를 중지하고 크리스마스를 축하할 것을 호소하였다. 그러나 이 크리스마스의 휴전은 양측 지휘부의 조치로 인해 1914년 이후로는 다시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 출처 : 출처 : http://www.greatwar.pe.kr/

1914년 크리스마스 휴전을 배경으로 한 전쟁영화 ;
# 메리 크리스마스 (Merry Christmas, Joyeux Noel) 2005년 프랑스, 독일, 영국, 벨기에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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