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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영화話

지중해의 낙원에서 종교분쟁의 지옥으로 변한 레바논

by 하승범 2014.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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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바논 (Lebanon, 이스라엘, 프랑스, 레바논, 독일 2009년)"은 레바논침공(Lebanon War, 1982. 6 ~ 1982. 9)에 참전했던 감독 사무엘 마오즈의 경험을 기반으로 1982년 6월 6일 이스라엘의 레바논침공 당시 전차병들이 탱크 안에서 사격조준기로 바라본 관점을 중심으로 전쟁의 본질 즉 승자와 패자 모두가 정신적으로 황폐화되어 피해자로 만드는 현실을 잘 보여주는 반전영화이다.


유대인에게 빼앗겼지만 팔레스타인은 무슬림의 땅이다.


오늘날 유대인과 이슬람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끝나지 않은 싸움의 최전선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있다. 이러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립은 "서구와 이슬람의 대립구조"로 변형되어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이슬람은 미국을 지구상에서 가장 타락하고 퇴폐한 문화를 가진 국가로 간주하여 배척하는 경향이 심하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이유만으로 미국에 대한 반감이 생긴건 아니다. 중동지역은 대부분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지만 유독 미국을 더욱 싫어하는 이유는 미국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 얽힌 문제에 개입하면서 부터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역할에 대해서는 건국 시기를 다룬 영화 '팔레스타의 영웅 (Cast A Giant Shadow, 1966년 미국)'을 비롯하여 많은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대인들은 기원후 1세기 유대왕국이 로마에 멸망한 후 2천년간 유럽 등에서 유랑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기독교' 유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먹은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저주받은 민족으로 온갖 박해와 민족적인 차별을 받으며 살았다. 그 2천년 동안 팔레스타인은 95%의 아랍인과 5%의 유대인이 평화롭게 공존하며 생존한다. 그 땅의 주인은 아랍인들이었다. 


"팔레스타인은 이슬람의 영토이다. 그러므로, 팔레스타인의 해방은 어디에 있는 무슬림이든 무슬림 개개인의 의무이다" 팔레스타인 강경 무장세력 하마스의 이러한 서약은 이슬람의 시각에서 현 이스라엘 영토는 어느 개인이나 어느 단체의 것도 아니라 이슬람의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유대인이 이스라엘 국가를 선언했을 때 그것은 이슬람에 대한 모욕이었다. 이슬람 영토를 빼앗아 국가를 수립한 것이기 때문이다.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즉 이슬람은 같은 성서의 백성이다. 함께 유일신을 믿고 팔레스타인을 중심으로 하는 척박한 땅에서 제한된 생태계를 공유하며 유목과 목축을 주업으로 살아온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민족들이다. 구약성서와 코란에도 두 민족은 아브라함을 공통의 조상으로 받들고 있다. 두 민족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을 각기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 예루살렘은 그들 모두의 성지이다. 예루살렘 성은 유대교, 기독교, 그리스정교, 이슬람교의 4개 지역으로 나누어져 공존한다. 그런데 현실은 증오와 반감이다.


지중해의 낙원에서 종교분쟁의 지옥으로 변한 레바논


이스라엘과 시리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레바논은 그 지리적인 요건으로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혼재되는 역사성으로 분쟁과 갈등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이슬람교 내부의 시아파와 수니파 갈등까지 불거지면서 그 혼란은 더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레바논은 팔레스타인 난민을 받아들이며 남부에 팔레스타인난민촌을 설치했다. 이럴게 수많은 팔레스타인 난민이 유입되면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중심으로한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의 근거지가 되었다. 이러한 팔레스타인에 반대하는 레바논 내 기독교인들도 그에 대응하는 팔랑헤[Phalange]민병대를 결성했고 이스라엘은 이들을 지원했다.


결국 이러한 갈등으로 1975년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간의 내전에 발생하고 1976년 시리아군이 개입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1982년 6월 이스라엘은 레바논에 있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레바논 을 침공하여 베이루트를 점령한다 (First Lebanon War, Operation Peace for Galilee). 그리고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주둔하고 있는 서베이루트를 포위하고 2개월에 걸쳐 맹포격을 가한다.


1982년 8월 미국 중재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서베이루트 철수합의가 성립되어 약 1만여명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게릴라가 아랍 세계 8개국으로 퇴거하게 된다. 이 영화는 그 당시 이스라엘 전차병의 시각에서 바라본 전쟁의 본질을 현실감있게 조명한다.


현재 레바논에는 이스라엘과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침공에 맞서 등장했던 시아파 무장저항조직 '헤즈볼라'와의 충돌을 막기 위해 우리나라 '동명부대'를 비롯한 다국적 UN평화유지군이 주둔하고 있다.  


끝나지 않는 싸움의 또 다른 시작, 사브라-샤틸라 학살사건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침공 당시 있어서는 안될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기독교계 팔랑헤민병대에 의해 자행된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대한 학살사건이다. (사브라-샤틸라 학살 (Sabra and Shatila Massacre).


당시 이스라엘군의 지원을 받는 기독교계 팔랑헤민병대 200여명은 테러용의자를 색출한다는 구실로 사브라[Sabra]-샤틸라[Shatila]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난입하여 3천여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을 학살한다. 학살된 이들의 절반이상은 여성과 아이들이었다.


이스라엘군은 전차로 난민촌을 포위한채 밤새도록 조명탄을 쏘아 이 학살극을 지원하였다. 이에 반발하여 반이스라엘 투쟁을 위해 결성된 시아파 무장세력이 '헤즈볼라'이다. 결국 중동의 복잡한 자살폭탄테러 같은 극단적인 투쟁의 밑바닥에는 '사브라-샤틸라 학살'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그들이 유럽에서 겪었던 반감과 차별을 팔레스타인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똑같이 취하고 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 만큼이나 유대교 원리주의자들도 극단적인 방법으로 팔레스타인을 학대하고 심지어 그들의 집과 재산을 빼앗고 내쫓기 까지 한다. 소위 그것이 그들 '신'의 원칙이라는 주장을 한다. 도대체 같은 '신'이 왜 다른 대답을 하는 것일까!


이스라엘의 다큐멘터리 감독 아리 폴먼은 자전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 "바시르와 왈츠를 (Waltz With Bashir, 2008년 이스라엘, 독일, 프랑스)"을 통해 비극적인 사건 '사브라-샤틸라 학살'을 직접 다룬다. 그는 이 애니메이션을 통해 전쟁과 인간의 관계를 고발하는 반전메시지를 전달한다. 

애니메이션 "바시르와 왈츠를 (Waltz With Bashir, 2008년 이스라엘, 독일, 프랑스)"은 다큐멘터리 감독 아리 폴먼이 자전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1982년 레바논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사브라-샤틸라 학살'에 동조한 이스라엘 병사들의 경험을 통해 전쟁과 인간의 관계를 고발하는 반전메시지를 전달하는 애니메이션이다.


유대교와 이슬람의 진정한 화해는 불가능한가?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영혼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마태복음 16장 26절) 최근 이스라엘 내의 평화주의자들에 의해 팔레스타인 정책에 대한 변화 요구가 생겨나고 있다.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화해와 공존의 평화협정을 조인함으로써 평화의 기틀이 마련되기도 했다. 두 민족간의 감정의 골이 깊고 종교적인 견해차이와 양쪽에 극단적 견해를 갖는 세력이 존재하며 결코 쉽지 않은 과제를 수행하여야 한다. <이 글은 2013년 10월 씨알뉴스(www.crnews.co.kr) 지식나눔에 기고하였던 글입니다.>

1982년 6월 이스라엘의 레바논침공에 투입된 전차 '코뿔소'와 보병부대 '신데렐라'는 도시에 남은 잔당을 색출하며 이동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영화는 이 과정에서 전차포격수 '슈물릭'이 스코프로 바라본 전차 밖 전쟁의 모습을 담아낸다. 처음부터 끝까지 좁은 전차 내부의 모습과 스코프로 보여지는 풍경만으로 화면을 구성한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쟁의 본질과 그 속에서 피혜해져가는 전쟁의 현실을 보여주기에는 '전차스코프'와 좁은 전차내부는 의미있는 장치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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