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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인의 해병 1961년 한국

한국전쟁

by 하승범 위드아띠 2006. 12. 24.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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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인의 해병 1961년 한국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과 대치하고 있는 최전선의 해병전초 소대을 배경으로 적진 탄약고 폭파를 위해 침투한 5인의 특공대를 그린 전쟁영화.

감독 : 김기덕
출연 : 최무룡, 신영균, 황해, 박노식, 곽규석, 김승호, 독고성, 윤일봉, 황정순, 윤일봉


한국 해병대(海兵隊, ROKMC, ROK Marine Corps)는 1949년 4월 16일 진해 덕산비행장에서 에서 창설, 1949년 5월 5일 대통령령 제88호 '해병대령'이 공포되었다. 이후 1949년 8월 해병대는 2개 대대규모로 증편되어 같은 12월 제주도로 주둔지를 옮겨 공비토벌작전에 투입된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7월 15일 군산상륙을 시작으로 전쟁에 참전하여 통영상륙작전, 인천상륙작전, 서울탈환작전, 도솔산지구전투, 김일성고지전투, 김포지구전투, 장단지구전투 등을 치룬다


오덕수 해병소위는 일선 소대장으로 중공군과 대치하고 있는 최전선에 배치된다.   그곳은 아버지 오성만중령이 지휘하는 대대이다.   그러나 오덕수 소위는 아버지의 형에 대한 편애로 부자관계가 소원했기에 그 상황이 반갑지가 않다.

적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적의 반복적인 포격을 받아가며 참호속에허 현위치만 고수하는 현실이 못마땅하고 또 지쳐만 가고 있다.   오덕수 소위가 지휘를 맞게 된 소대에는 농부 출신의 영선, 대학 출신의 종국, 고향에 홀어머니를 두고 온 훈구, 의장대 출신의 주환 등이 있는데 이들은 자신들을 유난히 괴롭히는 분대장과 갈등하며 생활하고 있다

종국과 함께 잠복근무를 하던 하영규 해병이 적 정찰조와의 전투중에 사망을 한다.

유난히 하영규 해병을 아끼던 분대장은 적을 직접 타격하지 않는 작전에 분노하고 있던 중 홀로 적진지로 들어가  적의 상황과 이동경로, 탄약고 등의 중요한 정보를 갖고 돌아오다 부상을 당해 전사를 한다.

분대장이 갖고 온 적 탄약고에 대한 정보는 서해안으로 접근하는 적병력이 사용할 것으로 판명됨에 따라 탄약고 폭파를 위해 특공대를 구성한다.   분대장의 전사에 분개한 분대원들이 자진하여 특공대로 나서고 오소위가 그 지휘를 맡아 적진으로 침투한다.

오소위는 적침투전에 아버지 오중령으로 부터 형을 편애한 이유가 형이 어머니가 재혼하기 전에 낳은 아버지가 다른 형제임을 알게 되고 아버지와의 오해를 푼다.

적진에 침투한 특공조는 탄약고를 파괴하고 돌아오는 과정에서 오소위를 비롯하여 4명이 전사를 하고 종국 만이 생존하여 부대로 복귀한다.

처음 이 영화를 접하며 '배달의 기수'류로 선입감을 갖고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역시 수작을 만든 김기덕감독 답게 단순한 반공영화가 아니라 전쟁의 상황에 놓인 병사들의 갈등을 적절하게 풀어나가고 있었다.    70~80년대의 전쟁영화가 침체기를 맡게 된 것이 어쩌면 이데올로기를 강조한 정치적인 정책의 산물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스티븐의 영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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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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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9.05 00:28
    퍼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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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11.07 03:14
    이 영화가 1961년에 나왔지만 실제 제작은 1960년에 됐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195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전쟁의 아픔은 가볍게 다룰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그러던 것이 1961년 516쿠테타 이후의 전쟁영화들은 본격적인
    반공선전을 위한 군사물의 색체를 더욱 띄기 시작하니까요.
    1970년대는 국책영화들 때문에 절정에 이르렀죠. 국책영화가 가져온
    엄청난 문제는 임권택 감독의 <증언>에서 절정을 이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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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지요. 60~70년대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가 보여주는 한계이지요. 보통 전쟁을 치룬 20~30년이 흐른 다음에는 진정으로 아픔과 고통, 역사를 올바로 뒤돌아보는 문학이 등장하는데 한국에서는 권위주의 정권으로 인해 그런 노력이 미흡했던 것이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