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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전략정보국(OSS), 항일투쟁을 위한 '한국그룹(Korean Group)' 운영.

전쟁영화 감상究/전쟁역사 그리고...

by 하승범 위드아띠 2008. 8. 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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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전신인 전략정보국(OSS, The Office of Strategic Services, 전략사무국)이 1945년 일제 저항운동을 확산할 목적으로 한국그룹(Korean Group)을 조직했으며, 함용준 박사 등 한국계 인사 다수가 참가했었다고 한다.

최근 미 국립문서보관소(NARA)에서 공개한 전략정보국(OSS, The Office of Strategic Services)요원 명단을 분석한 결과, 전략정보국(OSS, The Office of Strategic Services)는 창설 초기인 1942년부터 한국계 요원을 모집해 1946년까지 임시직을 포함해 80여명을 채용한 것.  전략정보국(OSS)는 산하 극동작전국(FETO)과 중국에서 활동할 요원을 양성하기 위해 일본어와 중국어, 영어, 한국어를 동시에 구사할 수 있는 동양인을 모집하면서 일본과 적대 관계에 있던 한국계 인사들을 선발했던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전략정보국(OSS) 요원훈련시절의 장준하선생

H H 언더우드(한국명 원한경) 박사는 1945년 6월부터 지역대표 요원으로 활동했고 그의 아들인 H G 언더우드(원일한) 미 해군 중위도 전략정보국(OSS, The Office of Strategic Services)에 지원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또한 당시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벌이던 이승만 박사는 1942년 9월 요원 후보 8명을 추천하였고 비서인 장기영, 장석윤(전 내무장관)도 활동하는 등 전략정보국(OSS, The Office of Strategic Services) 활동을 적극 후원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광복군을 OSS 요원으로 훈련시킬 것을 협의하는 김구

한편 함용준 박사는 1945년 9명으로 구성된  전략정보국(OSS, The Office of Strategic Services) 한국그룹(Korean Group) 등을 이끌고 중국에 파견됐다. 함용준 박사, 서상복, 피터 김 등은 1945년 8월 한국에 억류된 연합군 포로 석방을 위해 C-47기를 타고 침투하다 항공기가 불시착하자 통역전문가로 나서 요원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킨 공로로 미 정부로부터 군인장(Soldier's Medal)을 받았다.

전략정보국(OSS, The Office of Strategic Services) 한국그룹(Korean Group)은 다른 미국 요원 4명과 함께 1945년 8월 1일 중국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에 도착했다. 이들의 임무는 중국 충칭에서 한국인 등 200명을 모집해 한국 침투훈련을 시키고 지하 네트워크를 구축해 정보수집 및 분석, 역공작을 추진하는 것 등이었다고 한다.

오하이오 웨슬린대 출신 윤기승과 미군정보서비스(MIS)어학교 출신 강한모, 조종익, 박기북 등도 전략정보국(OSS)에서 근무했다. 이번에 전략정보국(OSS, The Office of Strategic Services) 중국지부에서 채용되었던 인사는 공개되지 않았으며 추후 공개될 예정이라고 한다 <2008-09-05 세계일보/뉴스종합>


일제 강점기간 미국 내 독립운동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
창공으로 (Blue Sky) 2006년 한국
HAAN 한길수 (Haan) 2005년 한국

사용자 삽입 이미지출처 ;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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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일본에 원폭이 투하되지 않았다면, 그래서 미국이 일본 본토 상륙을 했다면, 그리고 이들이 한국 내에서 활동을 시작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