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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의 살인무기 AK-47 자동소총

전쟁영화 감상究

by 하승범 위드아띠 2007. 2. 23.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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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관련 영화나 제3세계 분쟁에서 항상 접하게 되는 총기 AK-47 자동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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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으로부터 50년 전, 칼라쉬니코프(Kalashnikov)라 불리는 구 소련의 한 병사가 자동소총 한 정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리고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진 오늘에 와서 그 병사가 만들어 냈던 AK-47 자동소총은 전 세계에 5천5백만 정이나 보급되었으며, 그 덕택에 게릴라전이 지구상에 난무하게 되었다..

50년 전 소련정부가 AK-47 경기관 자동소총을 소련 군대의 표준 소총으로 채택한 순간부터, 최전선 전쟁터는 물론 테러리즘이 끊이지 않는 후방을 막론하고 적을 사살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후부터 AK-47 자동소총이 마침내 모든 분쟁지역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인기있는 도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여러 강력한 무기가 등장하여 전쟁터에서 그 위력을 발휘하기는 했지만 AK-47과 같이 5천5백만 정이라는 엄청난 숫자의 무기가 전세계에 폭넓게 보급된 경우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칼라쉬니코프가 처음 AK-47 자동소총을 만들어냈을 때 그것의 가장 큰 특징은 견고함과 단순함이었다.

철판을 용접해 만든 AK-47 자동소총은 그 이전의 어떤 개인소총보다 튼튼했고, 다소 거칠고 조잡하기는 했지만 간단한 작동원리만 파악하면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총 속에 모래나 먼지가 들어가더라도 간단히 제거한 후 사격을 재개할 수 있으며 러시아의 온갖 악천후 속에서도 거의 정상적으로 작동될 수 있도록 디자인 되었다.

이후 칼라쉬니코프가 만들어낸 이 만능 자동소총은 칼라쉬니코프 자신의 운명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운명을 크게 변화시키는데, 그것은 AK-47 자동소총이 이전의 전투가 불가능한 상황을 전투 가능한 상황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AK-47 자동소총은 분해와 결합이 지극히 간단하면서도 고장이 거의 없어 자이레의 일자무식꾼과 전쟁이 끊이지 않는 크메르, 라이베리아의 어린애들조차도 몸에 지니고 다닐 정도였다. 한마디로 사람을 죽이는 일은 식은 죽먹기와 다를 바가 없게 된 것이다.

칼라쉬니코프가 만들어낸 살상무기는 인간의 피냄새를 맡은 상어가 떼를 지어 모여들듯이 피와 혼돈이 존재하는 곳이면 지구상 어디서나 전염병 같이 번져나갔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 참가한 이스라엘 선수들을 공격한 이른바 ‘검은 9월’ 사건 당시에 악명을 떨친 후, AK-47 자동소총은 같은해 일본의 좌파인 적군파가 로드(Lod) 공항을 기습공격하는데 사용되었으며, 1981년에는 사다트 대통령을 살해하는 무기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AK-47 자동소총은 1989년 캘리포니아 스탁턴에서 있었던 다섯 어린이 살해사건에 동원된 무기 였으며, 1995년에는 사다트의 후계자였던 호스니 무바라크 살해 미수사건에서 다시 한번 최고의 살인무기로서의 명성을 회복하고자 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피냄새 진동하는 살생의 현장에서 AK-47 자동소총이 화약 연기를 내뿜었던 사건은 페루 리마의 투팩 아마루 대사관 인질극이었다.

AK-47 자동소총은 교묘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전세계로 보급되었다. 소비에트 연방은 한때 르완다의 투치족을 지원했던 우간다인들에게, 자이레의 로렌트 카빌라 반군에게 AK-47 자동소총을 공급했다. 그리고 무려 6백만 정의 AK-47 자동소총이 20년 이상 내전에 시달리고 있는 모잠비크에 공급되었다. 아프리카에 이어 AK-47 자동소총이 독버섯처럼 번져나간 곳은 바로 지구상 최대의 화약고 중동이었다. 소비에트 연방은 초창기에 AK-47 자동소총 생산공장을 이집트에 구축하고 시리아인들을 이 소총으로 무장시켰다.

이집트와 시리아 그리고 이웃 아랍 국가들은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에 AK-47 소총을 공급했으며, 1970년대 PLO의 주류 온건파인 알파타(al-Fatah)파는 요르단 기지에서 서독의 적색군 간부요원을 AK-47 자동소총으로 훈련시켰다.

1980년대 레바논에서는 이란이 아랍 강경파 무장집단인 아말과 헤즈볼라 파에게 AK-47 자동소총을 공급했으며, 이라크는 그들의 레바논 괴뢰정권에게 AK-47 자동소총을 공급했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의 무기가 적과 아군을 불문하고 공통의 살생무기가 되었듯이 70, 80년대 중동에 있어서도 이스라엘뿐 아니라 이스라엘과 맞선 아랍 연맹국들 모두 AK-47을 들고 적과의 전투에 나섰던 것이다.

소비에트 연방에서 만들어진 AK-47 자동소총은 한때 냉전시대 최대의 적이었던 미국에서도 공공연하게 가장 사랑받는 살상무기로 자리잡았다. 1982년 미중앙정보국 CIA는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게릴라 세력인 무자헤딘을 AK-47 자동소총으로 무장시킬 것을 결정함으로써 파키스탄을 통해 40만정이 아프가니스탄으로 흘러들어갔다. 그 무렵 소련연방은 기존의 AK 소총보다 훨씬 정확하고 유효 사정거리가 더 길면서도 가벼운 AK 소총을 개발해냈다. 따라서 미국이 성능이 크게 개선된 신AK 소총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러시아군인을 죽이고 승리의 전리품으로서 AK 소총을 탈취하는 것이었다.

칼라쉬니코프가 만든 AK-47 자동소총의 시중가격은 `취득의 용이성`과 `살인에 대한 수요`의 함수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크메르루즈군이 배고픔에 지쳐있는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지대에서는 10달러에 매매되고 있고, 전운이 최고조에 달했던 체첸 공화국에서는 도덕성이 마비된 러시아 군인이 그들을 죽이려고 하는 적들에게 1백 50달러에 팔아넘겼었다.

1995년 앙골라-나미비아 국경지대에서는 AK 소총이 13달러 80센트에 거래되었으며 동부 뉴욕에서도 가장 험악한 브루클린에서는 1997년 4월 현재 6백 달러, 남서부 LA에서는 5백 달러, 그리고 이라크의 쿠르드족 사이에서는 17달러 수준에서 시장가격이 형성되고 있다. 이제 탄생 50주년을 맞이하고 있는 이 우아한 소총은 지금까지 인간이 만든 무기 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개인 무기로 완전히 자리를 잡은 것이다. (에스콰이어 97년 7월호 내용중에서)

# 러시아 AK 47 돌격소총 개발 6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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