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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유럽

브레스트 요새 (Brestskaya krepost, Fortress of War) 2010년 러시아

by 하승범 2011.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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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스트 요새(Brestskaya krepost, Fortress of War) 2010년 러시아

제2차 세계대전 독소전쟁 개전초기인 침공한 독일군에 대항하여1941년 6월 22일부터 7일간 벌어진 폴란드 국경지역 벨로루시 "브레스트 요새"에서의 소련군(赤軍, Red army) NKVD 국경수비대의 항전을 그린 전쟁영화.

"23년 전에 독일군이 강화조약을 강요했던 곳인 국경 요새도시 브레스트-리톱스크가 첫째 날에 고립되었다. ...  브래스트-리콥스크요새(Brest-Litovsk Fortress) 수비대원 일부는 무려 한 달을 버티다가 7월 20일에야 저항을 마쳤다" (2차세계대전사(The Second World War) 존 키건, 청어람미디어, 2007)


감독: 알렉산더 코트 Alexander Kott
출연: 안드레이 메르즈리킨 Andrey Merzlikin, 파벨 데레비앙코 Pavel Derevyanko

1941년 6월 독일군 '동방정벌계획' 바바로사작전(Operation Barbarossa)

1941년 6월 22일 03시 15분, 독소불가침 조약(Molotov–Ribbentrop Pact,German-Soviet Nonaggression Pact)을 휴지 조각으로 만들며 히틀러의 독일군은 동쪽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소련 침공 작전(동방정벌계획) "바바로사 작전(Operation Barbarossa)"[각주:1] 이 시작된 것이다. 

"러시아를 상대로 하는 전쟁은 기사도식으로 수행될 수 없는 그런 전쟁이 될 것 입니다. 이 싸움은 세계관의 전쟁이고 인종 전쟁이며, 전례없고 무자비하고 가차 없는 업혹성을 가지고 수행되어야 할 것 입니다. 모든 장교는 자신에게서 낡은 이데올로기를 없애야 할 것 입니다. 본인은 귀관들이 그 같은 전쟁수행방식의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만, ... 본인의 명령이 이의 제기 없이 이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합니다. - 1941년 3월 30일 히틀러의 연설 중에서 (2차세계대전사(The Second World War) 존 키건, 청어람미디어, 2007)


히틀러는 비옥한 소련 영토는 '신의 선민' 게르만 민족의 생활근거지로 편입되어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유대인 다음으로 '지구상에서 존재할 가치가 없는' 슬라브 민족은 말살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독일 나치당은 그 태생이 소련 공산주의와는 반대의 이념을 갖고 있어 독일군 내에는 공산당원 슬라브 민족에 대한 인종 차별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런 의식은 독일군이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에서 보인 미군과 영국군을 대한 태도와는 전혀 다른 행동으로 소련군을 대하게 된다
. 이 영화에서는 이런 점들이 잘 드러나 있다. 훗날 입장이 뒤바뀌어 독일땅에 진주한 소련군이 이때 당했던 만행을 똑같은 방법으로 갚아주게 된다.  이렇게 독소전쟁은 "인종말살전쟁"의 양상이었다.

"독일 국방군 총사령부는 Commissar Order를 통해 소련의 정치 위원(코미싸르)은 전쟁 포로로 대우하지 말고 생포하는 즉시 처형할 것과 독일군의 소련 민간인이나 포로에 대한 가혹행위에 대한 처벌을 지휘관 재량에 맡길 것을 규정했다. ...  이런 명령에 따라 독일군은 공산당원이나 유대으로 판명되는 자들을 모두 처형하라는 식으로 받아들여졌고 더불어 러시아 마을에 난입하여 주민들의 저항 의지를 꺽기 위해 많은 사람을 학살했다. 이는 소련인을 쓸모없는 열등 슬라브 민족이란 인종 차별적 행동에서 비롯되었다.(독소전쟁사 1941~1945, 데이비드 M 글랜츠/조너선 M 하우스, 열린책들,2007)

브레스트 요새 (Brest Fortress)

'The Defenders of the Brest Fortress' - P. Krivonogov

"I'm dying but I won't surrender. Farewell, Motherland. 20.VII.41."

브레스트 요새(Brest Fortress)에는 소련군(赤軍, Red army) 제6소총사단(6th Rifle Division)과 제45소총사단(42nd Rifle Divisions),국경수비대(NKVD Border Troops) 등 3,500여명의 정규군과 의무대 등 민간인 및 300여명의 군인가족 등 7~8,000여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요새를 침공한 독일군은 기갑전술과 전격전(Blitzkrieg)이론을 창안한 하인즈 구데리안(Heinz Guderian) 장군이 지휘하는 중부집단군 제2기갑집단(2nd Panzer Group) 예하 제45보병사단(45th Austrian Infanty Division)을 주력으로 제31, 34보병사단(31st, 34th Infantry Divisions) 등으로 구성되었다.

볼 만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다소 러시아 공산당의 선전물 같은 느낌도 있긴 하지만 전장의 모습을 너무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그 참혹함을 느끼게 한다. - 스티븐의 전쟁영화보고評

  1. 바바로사는 붉은 턱수염이라는 뜻으로 제3차 십자군을 이끌고 동방 원정을 떠났다가 소아시아에서 익사한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 (1123~1190)의 별명이다. 독일을 도울 태세를 갖춘 채 튀링엔 산 속에 누워 잡자고 있다가 독일이 위기에 처할 때 나타난다는 전설이 있는 중세 황제의 이름이기도 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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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08.06 21:50

    게다가 독일의 포로였다가 귀환한 사람들을 스탈린은 '항복했었다'는 이유로 모두 시베리아로 보냈다지요. 이러나 저러나 돈없고 백없는 사람들만 고통인 것 같습니다.
    답글

    • Favicon of https://www.stevenh.co.kr BlogIcon 하승범 2011.08.07 11:18 신고

      소련 민중에게 스탈린은 최악의 지도자였지요. 37년~38년에는 소련군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하여 주요 군지휘관들 70~80%을 유배보내거나 총살에 처하지요.

      더구나 전쟁 전에는 독소불가침조약을 믿고 독일 침공을 준비하려는 군을 무시하였고 그러면서 자국 군대의 어쩔 수 없는 포로선택 등에 대해서도 가혹했지요. 어떤 의미에서 소련 민중이 참 대단한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