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템플 기사단 (Arn. Tempelriddaren) 2007년 영국,스웨덴,덴마크,노르웨이

중세전쟁

by 하승범 위드아띠 2012.01.14 23:33

본문

템플 기사단 (Arn. Tempelriddaren) 2007년 영국,스웨덴,덴마크,노르웨이

스웨덴 출신의 템플 기사단원 안 마그누손(Arn Magnusson)의 여정을 그린 얀 기유(Jan Guillou)의 3부작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대작 서사극. 이 영화의 원작인 얀 기유(Jan Guillou)의 3부작 소설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Vägen till Jerusalem,1998), '성전 기사'(Tempelriddaren, 1999), '왕국의 종말'(Riket vid vägens slut, 2000)으로 구성되었다, 

감독 : 피터 플린스 Peter Flinth
출연 : 조아킴 나테르크비스트 Joakim Natterqvist, 소피아 헬린 Sofia Helin, 모건 앨링 Morgan Alling, 비비 앤더슨 Bibi Andersson, 니콜라스 볼튼 Nicholas Boulton, 사이먼 캘로우 Simon Callow, 자콥 세데르그렌 Jakob Cedergren

▷ 템플 기사단(성전 기사단, 'Pauperes commilitones Christi Templique Solomonici (그리스도와 솔로몬 성전의 가난한 기사들)')은 제1차 십자군 이후 예루살렘 성지순례자를 보호하기 위해 1119년 말, 성지 수호를 제창한 프랑스의 귀족 위그 드 파앵 아래 아홉 명의 기사들이 모여 만들어졌으며 1129년 로마 가톨릭교회로 부터 공식적인 공인을 받았다
.

템플 기사단은 붉은색 십자가가 표시된 하얀색 겉옷을 입고 활동하며 십자군 전쟁 과정에서 많은 무공을 세웠다. 1307년, 프랑스왕 필리프 4세는 이단과 배교 행위 등 죄목을 씌워 템플 기사단을 탄압했다. 템플 기사단은 이단으로 낙인찍혔고 그들이 금융업으로 축적했던 막대한 재산은 필리프 4세의 차지가 됐으며 결국 1314년 해산당했다. ; 참고- 십자군 이야기

안 마그누손(Arn Magnusson)는 모친의 병치료와 수도사가 되길 원하는 희망에 따라 수도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수도원에서 그는 제1차 십자군 전쟁에 참전한 후 템플 기사단으로 활약했던 수도사로 부터 글과 무예를 배우게 된다. 자연스럽게 전사로 성장한  안 마그누손(Arn Magnusson) 위험에 빠진 여자를 구하는 과정에서 정당방위로 사람을 죽인다.

이후 수도원에서 집으로 보내진 
안 마그누손(Arn Magnusson)는 이웃 마을 세실리아(Cecilia Algotsdotter)와 사랑에 빠지지만 결혼도 하기 전에 임신을 하게 되고 그 사랑을 시기하는 세실리아의 여동생의 모함과 스웨덴의 왕이 된 어린 시설 친구 쿠니트(Knut Eriksson, King Canute I)를 도와 교회의 지원을 받고 있는 왕(king Karl Sverkersson, King Charles VII)의 살해에 가담한 사실까지 더해져 로마 가톨릭교회로 부터 '파문'을 당한다. 그 벌로  세실리아(Cecilia Algotsdotter)은 수도원에 감금되고  안 마그누손(Arn Magnusson)는 성지 예루살렘으로 보내져 템플 기사단의 일원으로 복무하게 된다. 

템플 기사단으로 복무하던 안 마그누손(Arn Magnusson)은 우연히 도적떼에게 쫓기던 이슬람의 지도자 살라흐 앗 딘(Saladin) 일행을 돕게 된다. 이 일을 계기로  안 마그누손(Arn Magnusson)은  살라흐 앗 딘(Saladin)과 개인적인 친분을 갖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살라흐 앗 딘(Saladin)의 이슬람 대군이 곧 예루살렘 성을 공격하게 된다는 사실을 통보받는다. 예루살렘을 비울 것을 제안한  살라흐 앗 딘(Saladin)의 제안을 거부하고 예루살렘 방어에 나선다.

살라흐 앗 딘(Saladin)의 대군이 예루살렘으로 진군한다.  살라흐 앗 딘(Saladin)은 소수의 병력으로 감히 자신을 공격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안 마그누손(Arn Magnusson)이 이끄는 템플 기사단 등의 매복기습공격에 크게 참패하고 후퇴한다. <몽기사르 전투(Battle of Montgisard, 1177년 11월 25일)

템플 기사단의 복무를 무사히 마친 안 마그누손(Arn Magnusson)은 세실리아(Cecilia Algotsdotter)가 있는 고향으로 향한다.  그 곳은 이제 친구인 스웨덴 왕 쿠니트(Knut Eriksson, King Canute I)가 장악하여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 몽기사르 전투(Battle of Montgisard) ; 1177년 11월 25일 람라 근처 몽기사르에서 벌어진 예루살렘 왕국과 아이유브 왕조의 전투이다. 살라흐 앗 딘(Saladin)이 이끄는 이슬람대군이 보두앵 4세(Baudouin IV)가 이끄는 예루살렘을 향해 진군해온다. 살라흐 앗 딘(Saladin)은 예루살렘의 소수 병력으로 이슬람대군을 공격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가 보두앵4세의 예루살렘군과 템플 기사단이 몽기사르에서 기습적인 기병공격을 받고 대패한다. 이 전투에서 이슬람병력 90%가 죽거나 부상당하고 괴멸되었다.

한센병을 앓고 있던  예루살렘의 보두앵 4세(Baudouin IV)는 전장에서도 앞장서는 강력한 리더십을 통해 존경받는 왕으로 군림한다.  몽기사르 전투(Battle of Montgisard)에서도  살라흐 앗 딘(Saladin)의 26,000여명의 이슬람군에 맞서 600여명의 기병과 함께 열여섯살의 보두앵 4세(Baudouin IV)가 함께하여 승리를 이끈다. 위의 사진에서 "병상에 누워 전투를 지휘하는 왕"의 모습이 보두앵 4세(Baudouin IV)을 표현한 것 이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