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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최대 크리스마스의 기적 '흥남철수작전'

전쟁영화 감상究/전쟁역사 그리고...

by 하승범 위드아띠 2014.12.27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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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0월 1일, 한국군 제1군단 예하 제3사단 제23연대 제3대대가 38선을 넘는다. 이후 북진을 계속하여 11월 중순에는 그 예하의 수도사단이 청진을, 제3보병사단이 합수를 각각 점령했으며, 특히 제3사단의 일부는 두만강 연안의 혜산진에 돌입하여 미군 제7보병사단과 손을 잡았다. 그리하여 한국군은 한·말 국경선까지 북진하였다.


국군보다 한 걸음 뒤늦게 원산에 상륙한 미군 제10군단도 그 예하의 제1해병사단으로 하여금 장진호 쪽을 공격하게 하고 제3보병사단을 예비대로 확보하는 한편, 제7보병사단을 혜산진 쪽으로 투입하였다.

 

그러나 11월 말 한국전쟁에 개입한 중공군이 전면 공세를 감행하고 나오자 한국군과 유엔군의 각 부대들은 험준한 산간계곡에서 포위망을 가까스로 벗어나 후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한국군 제3보병사단이 12월 10일 성진을 출항하여 부산으로 떠난 다음, 이 지역에 남은 미군 3개 사단과 국군 수도사단은 흥남에 집결하여 미 제10군단의 지휘 아래 철수를 하게 되었다.

 

중공군 제9병단 예하의 5개 사단과 북한 공산군 2개 군단 등 모두 9만 명에 이르는 적군이 포위망을 좁혀 들어오는 가운데 미 제10군단은 흥남시 둘레에 설정된 3중의 견고한 방어선에서 함포 지원과 공중화력 지원을 받아 가며 교두보를 방어하였다. 이때 투입된 수송선은 193척이었다.
 

12월 15일 미 해병 제1사단의 출항을 시작으로 하여 17일 국군 수도사단, 21일 미 제7사단이 차례로 흥남항을 벗어나면서 교두보의 방어선은 차차 축소되었다. 제3방어선에 남아서 뒤를 돌보던 미 제3보병사단이 12월 24일 마지막으로 흥남을 떠나자 철수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세계전사상(世界戰史上) 가장 큰 규모로 이루어진 이 해상 철수작전에서 한국군과 유엔군은 10만 5000명의 병력과 1만 7000대의 차량을 비롯한 대부분의 장비와 물자를 옮겼을 뿐 아니라, 9만 1000명에 이르는 북한 피난민들도 구출하였다

미군의 "흥남철수작전(1950년 12월 12일 ~ 12월 24일)"은 미군 제10군단과 한국군 제1군단이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를 피해 선박편으로 물자와 병력을 남으로 철수시키는 작전으로 당초 피란민 수송계획이 없었다. 흥남으로 몰려든 10만 명의 피란민들은 미군 수송선을 탈 수 있다는 아무런 보장도 없이 부두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흥남철수작전의 참모장이었던 에드워드 포니 대령이 현봉학 통역관(의사)의 간청으로 미10군단장 에드워드 아먼드 소장을 설득한 끝에 믿기지 않는 피란민 철수 작전을 이루어졌다. "미국인들의 유연한 실용주의적 정신과 청교도적 휴머니즘 그리고 한국인들의 성실한 삶의 자세가 만들어낸 신화적 사건이다"<한국전쟁 최대의 철수작전인 흥남철수작전>


흥남철수작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

# 국제시장 (Ode to My Father) 2014년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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