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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聯合艦隊司令長官 山本五十六) 2011년 일본

2차 세계대전-태평양

by 하승범 위드아띠 2016.02.28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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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聯合艦隊司令長官 山本五十六, Isoroku Yamamoto the Commander-in-Chief of the Combined Fleet) 2011년 일본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제국해군 연합함대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 1884년 4월 4일~1943년 4월 18일)'의 1939년부터 1943년까지 삶을 조명한 영화이다. 


감독 ; 나루시마 이즈루 Izuru Narushima

출연 ; 야쿠쇼 코지 Koji Yakusho, 타마키 히로시 Tamaki Hiroshi, 에모토 아키라 Emoto Akira, 야나기바 토시로 Toshiro Yanagiba


태평양전쟁 당시 미국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던 야마모토는 육군 강경파에 맞서 미국과의 전쟁을 반대하였다. 그러나 전쟁이 결정되자 항공모함을 주축으로 하는 일본제국해군의 항모기동부대를 지휘하여 '진주만'을 기습침공한다. 


그는 일찌기 해군항공대를 육성하고 전술 능력을 배양하는 등 항공모함을 기반으로 하는 항공전을 준비하였다. 그런 전술은 진주만 침공과 미드웨이 해전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그러나 진주만과 달리 미드웨이 해전에서 패배를 한다. 1943년 4월 18일 부겐빌 섬을 시찰하기 위해 라바울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미 육군항공대(United States Army Air Forces)의 공격을 추락하여 사망한다.


야마모토 이소로쿠 (山本五十六)에 관한 다른 영화들 ;

# 야마모토 제독과 연합함대 (軍神山本元帥與聯合艦隊, Admiral Yamamoto and the Allied Fleets) 1956년 일본

# 연합함대사령관 ; 야마모토 이소로쿠 (聯合艦隊司令長官 山本五十六) 1968년 일본

# 연합함대 (聯合艦隊) 1981년 일본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0년 9월 27일 독일, 이탈리아, 일본 삼국은 독일 베를린에서 군사동맹조약을 체결한다  이 조약에 의해 이들 국가를 연합국측에 대항하는 '추축국 (樞軸國, Axis Powers)이라고 한다.


(삼국 동맹 조약 (三國同盟條約, 日独伊三国同盟), () 일본은 독일과 이탈리아가 유럽의 새로운 질서 확립을 주도하는 것을 존중하고 이를 인정한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일본이 대동아 공영권 확립을 주도하는 것을 존중하고 이를 인정한다.)



일본 정계와 언론은 독일 중심으로 변하는 세계 정세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동북아 지역에서의 걸림돌이 되는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독일 등과 '삼국동맹조약'을 추진한다. 그러나 야마모토 이소로쿠 (山本 五十六) 해군차관 등 일본 해군성은 미국과 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는 우려에 오랜 시간 '삼국동맹조약'을 체결을 반대한다


하지만 일본 정계와 언론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독일, 이탈리아, 일본 삼국간의 군사동맹조약은 체결된다. 일본 언론 등은 동북아에서 중국과 전쟁을 하고 있지만 그 승리를 위해서는 결국 중국을 지원하는 미국과의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생각을 한다.



1941년 6월 독일은 소련과의 불가침조약을 파기하고 전격적으로 소련을 침공한다 (독소전쟁) 1941년 7월 일본제국군은 자원 확보 등을 명분으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침공한다. 이에 미국은 모든 철강, 석유 등에 자원에 대한 전면 금수조치를 단행한다.



1941년 10월 들어선 도조 내각(東條内閣)은 야마모토 이소로쿠 (山本 五十六) 연합함대 사령장관에게 그해 12월 미국, 네델란드, 영국에 대한 정벌 작전을 명령한다.


당시 일본 지도부는 미국과의 전쟁이 장기화가 되면 불리할 수 있으니 초기 강력한 승기를 잡아 유리한 환경에서 강화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독일이 독소전쟁에서 소련을 이기면 미국이 태평양과 유럽에서 전쟁을 할 수 없게 되어 미국를 쉽게 협상테이블로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 해군 연합함대는 하와이 오아후섬 진주만을 전격 공습한다. 진주만 공습작전이 성공하자 일본 정국과 국민들은 한껏 고조된 마음에 승리를 장담하며 축제 분위기에 흠뻑 빠져든다. 그러나 야마모토 이소로쿠 (山本 五十六) 연합함대 사령장관은 미국과의 고된 전쟁이 될 것을 걱정한다.



영화에서는 진주만 기습 이후 동경신문「東京日報」기자들이 야마모토 이소로쿠 (山本 五十六) 제독와 인터뷰를 하는 장명이 나온다. 여기서 야마모토 이소로쿠 (山本 五十六) 제독은 미국과의 강화를 주장한다. 실제 요미우리신문(読売新聞)과의 인터뷰가 그런 답변을 하였다.


▷ 요미우리신문(読売新聞) : 진주만 공습이 성공했는데, 이제부터 어떤 방식으로 미국과 싸우실 겁니까?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 五十六) : 미국과의 휴전조약을 준비할 겁니다.



1942년 4월 18일 제임스 두리틀(James Harold Doolittle) 중령이 이끄는 미 육군 B-25 폭격기 16대가 일본 근해까지 접근한 미 항공모함 호넷 함상에서 발함하여 일본 본토 도쿄, 고베, 나고야, 요코하마 등지를 폭격한다. 이 폭격으로 일본인 50명이 사망하고 400여명이 부상당한다.


이 폭격의 효과는 미미했지만, 진주만 공습으로 크게 침체된 미국민의 사기를 높여주었고, 일본에는 일본 본토가 미국 항공모합을 통해 직접 공격을 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동경일보' 기자들은 폭격에 의한 참상을 담은 보도 사진들을 보며 놀라고 분개한다. 그들은 전쟁의 확전을 위해 기사를 쓰며 주장했었다. 그러나 일본제국군에 의해 동북아시아는 물론 동남아시아 전역에 대한 공략(남방작전)으로 수많은 민간인이 학살되거나 피해를 입는 사실에는 눈을 감고 있다.


한편 1942년 5월 4일~8일 오스트레일리아 동북부 산호해 해전(珊瑚海海戰,The Battle Of The Coral Sea) 벌어진다. 이 해전은 니미츠(Chester William Nimitz) 제독의 미 해군 태평양함대와 야마모토 이소로쿠 (山本 五十六) 제독의 일본 해군 연합함대가 세계 최초로 항공모함끼리 항공기를 사용해 벌인 해전이다.


이 해전으로 미 해군은 항공모함 렉싱턴이 침몰하고 항공모함 요크타운이 대파한다. 일본 해군 또한 소형 항공모한 쇼호가 격침되고 정규항공모함 쇼가쿠가 크게 피해를 입는다.



일본 해군 연합함대 야마모토 이소로쿠 (山本 五十六) 제독은 미국과 장기전으로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미드웨이 섬 공략을 통해 미 해군의 항보 기동부대 전력을 일소하고 하와이를 점령하여 미국과의 강화를 통해 전쟁을 끝내려고 한다.


야마모토 이소로쿠 (山本 五十六) 제독은 세계에서 제일 큰 섬 '뉴기니'를 확보하고자 했다. 뉴기니를 통해 오스트레일리아 북부해안을 점령하거나 무력화시키고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사이의 교통로를 단절시켜 오스트레일리아를 대일전의 전초기지로 사용할 수 없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벌어진 전투가 '산호해 해전'이었다.


1942년 6월 4일 ~ 7일 벌어진 미드웨이 및 알류샨 공략전 (Battle of Midway)에 일본 해군은 전함 7척, 정규항공모함 4척 소형항공모함 다수를 포함한 총 165척이 참전하고, 미국 해군은 정규항공모함 3척을 포함하여 약 50여척이 참전한다. 미 해군은 당시 일본 해군의 암호전문을 감청, 해독하고 있었고 미드웨이 공략에 대해서도 사전 인지하여 대응하였다.


미 해군보다 압도적인 우위를 가지고 있던 일본 해군 항모부대의 주력 항공모함과 함재기, 숙련된 승무원들이 대부분 수장을 당하며 태평양 전쟁에서 미일간 우위가 바뀌는 분수령이 되는 해전이다. 일본 해군은 미드웨이해전에서 4척의 항공모함과 275기의 함재기, 3천여명의 장병을 잃는다. 한편 미 해군은 항공모함 요크타운이 격침되고 97대의 항공기와 300여명의 장병을 잃었다. 일본제국군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패전한 것과는 달리 알류산 열도에는 상륙, 점령에 성공한다.



그러나 일본제국은 패전한 미드웨어 해전에서 승전하였다는 거짓된 선전 선동을 통해 일본 내 여론을 조작한다. 한편 일본은 솔로몬 군도 과달카날 전투 (1942년 8월 7일 ~ 1943년 2월 9일)가 벌어지면서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에서 석유를 수송하는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일본 해군 연합함대 야마모토 이소로쿠 (山本 五十六) 제독은 솔로몬 군도와 뉴기니에서 연합군의 항공전력을약화시키고 마리아나제도 괌과 사이판으로 철수하여 이를 '불침항모'로 삼아 최후 결전을 통해 미국과 강화를 하는 전략을 구상을 한다.


이러한 구상에서 일본 해군은 약 400기의 항공기를 집중하여 1943년 4월 1일부터 4월 16일까지 대대적인 항공공격작전 이호작전(い号 作戰)을 실시한다. 그리고 연합함대 야마모토 이소로쿠 (山本 五十六) 제독은 일본 해군 항공대 사령부가 있는 부겐빌 섬으로 이호작전의 점검을 위한 전선 시찰에 나선다.



1943년 4월 18일, 라바울(Rabaul)에서 부겐빌 섬(Bougainville Island)으로 향하던 상공에서 일본 해군 연합함대 야마모토 이소로쿠 (山本 五十六) 제독이 탑승한 일본 205 해군항공대(205th Kōkūtai Naval Air Unit) 소속 1식 육상 공격기(Mitsubishi G4M, Mitsubishi Navy Type 1 attack bomber)미 육군항공대 미첼 (John W. Mitchell) 소령과 토마스 란피어 대위가 이끄는 347 전투비행단(347th Fighter Group) 제 339 비행대대(339th Fighter Squadron) 소속 P-38G 쌍발전투기들의 공격을 받아 격추된다


이는 미군의 복수작전(Operation Vengeance)의 성공이었다. 미군은 태령양전쟁 초기부터 일본 해군의 암호를 감청, 해독하고 있었고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의 행적을 파악하여 공격한 것이다.



일본군국주의를 부축이고 전쟁을 미화하던 일본 언론은 그 논조를 바꿔 미국과 민주화를 팔며 또 다른 언론 장사를 시작한다.()



과연 우리는 지나온 과거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여전히 주변의 상황을 아전인수격으로 판단하거나 새로운 질서구축을 위해 희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행동하는 것은 아닐까? 오늘의 일본이나 대한민국이나 여전히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 (山本 五十六) 제독, 그는 군인이었다. 군인으로써의 삶에 대해 이견은 없다. 전기영화는 일정부분 미화도 있다. 그냥 인정한다. 영화는 나름 프로파간다 매체이기에 그러하다. 그러나 역시 정치는 문제이다 () 2016-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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