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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영화 감상究/밀리터리 군사전력

레바논 평화유지군(UNIFIL)으로 작전중인 '동명부대'

by 하승범 하승범 2007.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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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평화유지군(UNIFIL)으로 작전 중인 '동명부대' 2007년 8월

# 레바논 유엔평화유지군(UNIFIL)으로 파병되는 '동명부대'

동명부대는 이스라엘 남부의 최대 도시 티르(Tyre)에서 동쪽으로 3㎞ 떨어진 '타이르 디바'에 주둔하고 있다.

동명부대는 주로 특전사소속 전투병력인 장교 78명, 부사관 135명과 행정, 통신, 의무, 수송 등의 지원업무를 담당하는 사병 144명 등 총 359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부 레바논지역에는 한국군을 비롯하여 이탈리아, 인도, 스페인 등 30여개국 13,286명의 유엔평화유지군(UNIFIL)이 파견,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임무는 유엔 결의안 1701호에 따라 레바논을 침공한 이스라엘군의 철군감시와 레바논정부의 통치력을 지원하는 것이다.

남부 레바논지역의 유엔평화유지군(UNIFIL)은 지난 1978년부터 이곳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이스라엘 등의 공격으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지역이기도 하다.  2007-09-10

# 동명부대, 파병 100일 맞아 새로운 각오 다져!  2007-10-29 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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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무역의 중심지이며 금융과 관광의 중심지로서 '중동의 파리'로 불린 레바논(Lebanon)은 동쪽으로 시리아, 남쪽으로 이스라엘에 경계를 이루고 있다.  레바논(Lebanon) 사태는 기독교와 이슬람이 공존하는 레바논 사태의 원인은 민족적, 종교적 다양성에 기인한다.  특히 팔레스타인에 대한 아랍과 이스라엘 간의 갈등이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제1차 중동전쟁(1948~1949) 당시 레바논은 아랍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 레바논 기독교도와 아랍세계간의 동질성을 과시하고 이후 팔레스타인 난민을 받아 들여 레바논 남부지역에 난민촌을 이루게 하였다.  그러나 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은 1958년 제1차 내전이 일어나기도 했다.

제3차 중동전쟁(6일전쟁) 이후 많은 팔레스타인 난민이 레바논에 유입되면서 정치상황이 불안정해 진다. 특히 레바논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거점으로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의 이스라엘 무장투쟁이 격화되면서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간에 불신감이 깊어진다.

레바논내 기독교민병대 가 이스라엘군과 함께 레바논 남부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공격하면서 PLO와의 전투가 시작된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아말민병대가 조직되면서 기독교와 이슬람간의 내전이 격화된다 (1968년~1978년)

1976년 사태 수습을 위해 레바논정부는 평화유지활동을 위해 파병을 시리아에 요청한다.  시리아 평화유지군이 레바논에 주둔하면서 영향력을 키우자 이스라엘은 1982년 레바논에서의 PLO 추출과 기독교 정권강화를 위해 침공한다. 이후 미국의 중재로 다국적군의 감독하에 PLO본부와 시리아군이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철군한다. (1978~1985)

레바논침공이후 레바논남부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이스라엘도 1985년 철수한다.  그러나 시리아가 레바논 동북부를 장악하고 PLO가 다시 복귀하면서 내전이 격화된다.

이후 기독교도는 시리아의 중재에 찬성하는 파와 반대하는 파가, 이슬람교도는 친시리아게 아말파와 친이란 이슬람원리주의단체 헤즈볼라 등의 강온경파로 분열되어 사태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19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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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레바논 '타이르 디바'의 한국동명부대 주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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