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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 당시 일본도 원자폭탄 개발추진

전쟁영화 감상究/밀리터리 군사전력

by 하승범 위드아띠 2015. 7. 26.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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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태평양전쟁을 조기 종결하기 위해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와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였다. 이 폭격으로 두 도시에서 20여만명의 사망하였다. 일본은 지금도 이 원폭을 강조하며 태평양 전쟁에서의 희생을 강조한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부는 1941년 1월 일본군이 전장에서 지켜야 할 행동규범 및 전튜규범으로 '전진훈(戰陣訓)'을 공포하여 실행하였다. 이 '전진훈(戰陣訓)'은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군인 최고의 명예로 강조하여 개인의 존엄을 무시하고 군국주의 이데올로기를 강조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전쟁기간동안 일본군은 '비합리적인 전투행동'이나 '명령'에 대한 맹목적 복종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일본의 분위기는 앞서 진행된 태평양의 무수한 섬에서 '옥쇄'(玉碎)한 '일본군'들의 비이성적 행동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특히 오키나와(沖繩) 전투(Battle of Okinawa)에서 일본군은 물론 오키나와 주민들까지 자살특공작전에 투입되어 약 10만명의 주민이 전사한다. 이렇게 일본군부의 '전진훈(戰陣訓)'은 동굴에서 '서로 죽이고 죽는 집단자살'을 서슴치 않고 잔혹한 군인과 주민들을 만들어냈다. - 이 사건으로 인해 현재 오키나와 주민들은 당시 일본 본토의 비인도적인 명령를 비난하며 독립을 주장하고 있다 -


오키나와에서의 미군의 경험은 악몽이었다. 미군의 포로를 거부하며 가족이 서로 총을 쏘고, 둥글게 모여 수류탄을 터뜨리고, 처자식을 사살하고 옥쇄를 하는 남편 등 이해할 수 없는 일본군과 오키나와 주민들의 광기는 미군에게는 오히려 '공포'였다. 일본 본토에 상륙하여야 하는 미군은 이런 광기어린 일본군과 일본국민을 상대할 경우 큰 피해가 예상된다고 판단했다.


실제 미군이 일본 본토에 상륙할 경우 100만명 이상의 미군이 희생될 수 있다고 추정되었다. 미군의 희생을 줄이고 전쟁을 조기에 종료하려면 일본의 정신체계 상 일본왕의 항복을 받아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 결과가 비밀리에 개발된 원자폭탄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1945년 8월 미국의 원자폭탄 사용에 대한 비난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매우 적절한 조치였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일본인들은 이 원폭의 희생자라고 강조하지만 그런 원폭의 희생(?)이 없었다면 일본은 재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본토는 초토화되었을 것이다. 또한 지금의 일본왕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전쟁의 시작이 없었다면 이런 원폭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발견된 자료에 의하면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도 원자폭탁을 개발하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일본 해군으로 부터 원자폭탄 개발을 의뢰 받은 교토(京都)제국대 아라카쓰 분사쿠(荒勝文策) 교수가 우라늄 농축 연구에 쓸 원심 분리기을 개발하고 있었다고 한다. 원자폭탄의 개발 완성목표가 1945년 8월 19일 이었다고 한다. 이와 별도로 일본 육군도 이화학연구소의 니시나 요시오(仁科芳雄) 연구실에 원자폭탄 연구개발을 의뢰하였다고 한다.


만약 종전이 지연되어 일본 군부의 노력이 성공하였다면 어떤 결과가 있었을까? 당시 일본 군부의 입장에서 미군 등 연합국에 대해 무차별적인 원자폭탄 사용이 예상된다. 그렇게 되었다면 전쟁은 지금보다 더욱 끔찍한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원칙적으로 전쟁을 반대하고 또 일반 시민의 희생도 절대 안된다. 하지만 큰 희생을 막기 위한 결단은 반드시 필요하고 그에 대한 올바른 평가도 필요하다


최근 일본 우익은 미국의 지지를 받으며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명분을 법적으로 합법화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필요한 군사력으로 일본을 활용하고 싶어한다. 일본 우익은 이 기회에 군사적인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이 이후 어떤 부메랑을 맞게 될지 걱정되는 대목이다. 역사는 이런 사정을 잘 보여준다. 특히 일본 우익의 역사인식을 고려한다면 그런 우려는 당연하다 () 2015-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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