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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역사 - 버나드 로 몽고메리

전쟁영화 감상究

by 하승범 위드아띠 2007. 3. 8.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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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역사
버나드 로 몽고메리 지음 / 책세상

1.
인생은 곧잘 전쟁에 비유된다. 아니, 인생은 그 자체로 전쟁이다. 어쩌면, 인간의 삶이란 인류에게 존재했던 그 어떤 전쟁보다 더 참혹하고 쓰라린 것일지 모른다. 인생이라는 전쟁은 보통 60년이 지나기 전에는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보다 더 오랫동안 진행된 전쟁이 있긴 했지만, 한 인간이 그토록 긴 시간을 전투병으로 참가한 전쟁은 없었다. 그래서 더 오래 산다는 것은 그만큼 고통과 시련이 깊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짧은 인생이라고 전투병 신세를 면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복무 기간이 좀 짧을 뿐이다. 어쩌면 더 농축된 고통을 당할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전투병의 길로 들어서서 끝을 알 수 없는 전쟁에 참전하게 되며, 그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들 내내 온갖 적들과 격전을 벌이고, 잠시 승리에 도취하지만 여전히 그에게 전역명령서는 전달되지 않는다. 그러다가 마침내,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전역명령서 대신 전사통지서가 그의 지인들 앞으로 우송된다. 그는 전사자가 되어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자신은 끝내 전쟁의 종식을 목격하지 못하며, 전사자의 운명이란 어김없이 그런 것이다.

‘사막의 여우’로 불렸던 로멜 장군의 독일 전차군단을 격파하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이끌어 2차대전에서 연합군의 승리를 견인한 영국의 장군 버나드 로 몽고메리가 쓴 『전쟁의 역사』를 들추어보는 일은 비유된 인생의 전쟁을 넘어서서 전쟁 그 자체인 인류 전체의 삶을 명징하게 확인하는 일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 삶을 역사라고 명명할 수밖에 없거니와, 이때의 역사란 각각 60년씩의 전쟁을 치르는 개개 인간들의 무려 7,000년짜리 무덤이다. 돌도끼로 시작해 칼과 포탄을 거쳐 핵무기에 이른, 그 우울한 역사의 무덤. 『전쟁의 역사』는 인류가 전쟁에 바친 온갖 수고와 노력, 비범한 인내력과 능력을 재확인하는 일인 동시에 평화를 위해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인간의 더할 나위 없는 가증과 위선, 폐허만을 전리품으로 획득할 수밖에 없는 허무한 운명을 새삼스레 경험시킨다. 가령, 종교적 명분을 내걸긴 했지만 결국 독일과 프랑스 간의 국가전쟁으로 비화한 30년 전쟁(1618~1648)에 대한 저자의 다음과 같은 설명은 이를 냉혹하게 증언한다.

30년 전쟁으로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것은 아마도 독일인들일 것이다…… 마크데부르크의 함락은 30년 전쟁 중 가장 참혹한 사건이었는데, 그때 3만 명의 주민이 불에 타 죽었다. 그러나 축적된 참혹상은 그보다 훨씬 더 끔찍했다. 독일 내에서 모두 800만 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보헤미아에서는 3만5,000명의 주민 가운데 단지 6,000명만이 살아남았다. 가장 부유한 지역의 피해가 가장 컸다. 독일은 프로테스탄트를 수호했지만, 다른 면에서 볼 때 독일 문명은 깊은, 어쩌면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말았다.(484~485쪽)

2.
『전쟁의 역사』는 20세기에 치러진 두번의 세계대전에 모두 참여했고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신중하고 완벽한 전략가로서의 버나드 로 몽고메리가 자신의 풍부한 전쟁수행 경험을 바탕으로 빚어낸 역작이다. 이것이 역사가에 의해 집필되는 일반적인 전쟁사와 『전쟁의 역사』가 변별되는 지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변별력이 아니라 몽고메리 개인이 우리에게 건네주는 ‘전투가 아니라 평화’라는 세심하고 사려 깊은 충고다. 기실 이 평화에의 충고는 거의 모든 전쟁사가 공통적으로 던지는 충고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쟁의 역사』가 취하는 평화론은 그의 방대한 전쟁사 전체에 편재(遍在)하는 전쟁 자체에 대한 예리한 분석과 해석, 친절한 설명과 단호한 결론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남다른 무게를 느끼게 한다. 가령, 저자가 그에게 ‘알라메인의 몽고메리’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선사한 알라메인 전투와 넬슨의 트라팔가르 해전을 동일시하는 대목에서 우리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역사의 중요한 특징 하나를 발견하게 되는 동시에 사료에 대한 치밀한 분석 못지않게 저자의 풍부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직관의 힘이 훌륭한 역사서를 담보한다는 사실을 확인시킨다.  

몽고메리는 로멜이 지휘하는 독일·이탈리아 동맹군을 이집트 알라메인에서 섬멸하면서 2차대전의 종식을 앞당긴 알라메인 전투의 영웅이었다. 그가 알라메인 전투를 넬슨 제독이 프랑스·에스파니아 연합함대를 격파하고 영국을 지켜낸 트라팔가르 해전과 동일시하는 이유를 들여다보는 일은 흥미로우면서도 의미 깊다.

트라팔가르 전투의 날짜(10월21일)와 알라메인 전투의 날짜(10월23일)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을 주목하면 흥미롭다. 하지만 두 전투는 그런 날짜 이상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즉 두 전투 모두 대륙의 강력한 적과의 기나긴 싸움에서 역전극을 연출했던 것이다. 연합군은 바다에서 뛰어났기 때문에 알라메인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연합군은 병력과 물자를 로멜보다 더 빨리 갖추지 못했다면 결코 승리를 거두지 못했을 테고, 그랬다면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에서나 중동 전역의 전투에서도 아마 승리를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교훈은 이렇다. 모든 역사에서 바다를 장악했던 나라가 결국 우위를 차지했다.(49쪽)

전선의 풍부한 체험이 단지 뛰어난 전쟁사를 쓰는 데만 유효한 경험일 리는 없다. “이 책을 쓴 것은 전쟁을 찬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서문 첫 구절에서 이미 충분히 감지되거니와 『전쟁의 역사』 1,040쪽을 관통하며 흐르는 도저한 맥류(脈流)는 평화를 얻기 위해 전쟁을 감행할 수밖에 없다는 인류의 불우한 운명이다. 이 운명론이야말로 모든 전쟁사가 씌어지는 진정한 이유일지 모른다. 그런데 ≪전쟁의 역사≫가 이 운명론을 수용하는 방식이 지극히 정서적이라는 점이 놀라운데, 여기에 작용하는 것 역시 바로 몽고메리의 오랜 전쟁 체험이다.  

전쟁의 직접적 경험보다는 일반사적·정치사적 흐름에 집중해 기술되는 역사가의 전쟁사에는 전쟁 수행자들이 겪는 생생한 인간적 고뇌가 누락될 수밖에 없다. 전장(戰場)의 군인들을 짓누르는 피로와 공포, 결핍과 절망, 시시각각 다가오는 부상과 죽음 같은 것들은 직접 체험하지 않고서는 핍진하게 그려낼 수 없는 것이다. ≪전쟁의 역사≫가 전쟁소설처럼 읽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1차대전 중 한 서부전선의 전황을 저자는 이렇게 묘사했다.

1917년 6월 영국군은 메시네 산마루를 차지했다. 잠시 휴지기가 있은 다음, 7월 11일부터 11월 10일까지 3차 이프르 전투가 벌어졌다. 8월에는 정상 강우량보다 두 배나 많은 비가 내렸고, 10월 3일부터는 거의 쉬지 않고 비가 내렸다. 병사들은 진창에서 싸우다 죽었고, 포탄 구덩이에 빠져 익사했다. 그곳에서 생존한 영국 병사들은 ‘파스샹달’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공포를 느꼈다. 그 공포는 파스샹달 산마루를 정복하면서 절정에 달했지만, 그 이상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영국군은 24만 명의 병사를 잃었고, 독일도 같은 수의 병사를 잃었다.(802~803쪽)

이는 그가 경험하지 못한 전쟁, 가령 중동과 유럽의 국가들이 피레네 산맥을 넘나들며 치렀던 중세의 한 전쟁에 대한 연대기 편자 이시도루스 파켄시스의 묘사와 비교될 만하다.

북부인들은 꼼짝 않고 벽처럼 서 있었다. 그들은 함께 얼어버려 결코 녹지 않을 얼음띠와도 같이 단단하게 전열을 갖추고 아랍인들을 칼로 베었다. 그 아우스트라시아인(메로빙거 왕조 시대의 프랑크 왕국의 일부)들은 거구에 무쇠 같은 손으로 도끼를 휘두르며 그 굉장한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웠다. 사라센의 왕을 찾아 단칼에 벤 것도 그들이었다.(p.273)

3.
‘평화전쟁’이라는 고도의 목적성을 구현하는 『전쟁의 역사』의 저자 몽고메리가 주목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전쟁의 최고 혹은 최종 책임자로서의 장군의 본분, 즉 제너럴십(generalship)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수많은 군인들의 명성을 매장시키는 무덤’과 같은 정치적 논리다. 이 둘은 극명한 차이를 드러내지만 결국 하나로 얽힌다. 왜냐하면 장군에 대한 평가는 그가 행한 직무와 군사적 배경에 의해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군사작전과 전투는 단지 정치적 이유만으로 치러지기 때문이다.  

“전투에는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과에 대해 도무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조차, 그럴 때 특히, 계획이나 작전에 있어서 한껏 자신감을 과시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야말로 지휘관이 지닐 수 있는 가장 큰 재산 가운데 하나”(52쪽)라고 강변하는 저자의 태도는 책상 앞에 머리를 괴고 앉은 정치가들의 국가의 명운에 대한 고뇌는 결코 전선의 병사들의 목숨을 지켜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암시한다. 정치가들에게는 요구되지도 않고 요구할 수도 없는 제너럴십이란, 몽고메리 자신이 몸소 보여주었듯, 미련하도록 철저한 사전준비와 명민한 판단력이다. 그것만이 승리를 끌어오고 병사들의 목숨을 담보한다.  

가령, 몽고메리는 히틀러가 패망의 지름길로 내달린 연유를 러시아 침공에서 찾아낸다. “독일이 지중해와 북아프리카에서 영국과 벌이고 있던 전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짓지도 않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이중으로 어리석은 실수를 했다. 러시아에 투입했던 병력과 장비, 특히 기갑 사단을 아프리카에 투입했더라면, 독일은 이집트와 수에즈 운하를 얻었을 테고, 아마도 중동을 장악할 수 있었을 것이”(863쪽)라는 그의 판단은 바로 제너럴십의 중요성을 증거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는 전쟁에 관한 한 다시 씌어지기 힘든 역작의 하나인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에 등장하는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과 관련된 다음과 같은 대목에 정확히 겹쳐져 이채롭다.

나폴레옹이 러시아와 싸움을 시작한 것은 그가 드레스덴에 가지 않고는 배기지 못했기 때문이며, 명예에 눈이 어두워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며…… 나폴레옹 군대가 패망한 까닭은, 그들이 겨울철에 대비한 원정의 채비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여름철이 거의 갈 무렵에 러시아 땅 깊숙이 침입했다는 것과, 한편으론 러시아의 도시들이 불태워지고 러시아 국민들에게 적개심의 눈이 뜨인 결과 전쟁이 특수한 성격을 띠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는 누구 한 사람 여기에 대해서 반론하지 못하지만, 그 당시에는 이처럼 명백한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던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즉, 매우 우수한 장군에 의해 통솔되고 있던 세계에서 손꼽히는 80만의 군대가 그 힘의 절반도 되지 못하고 경험도 없는 장군들의 지휘를 받은 러시아 군대와 싸워 전멸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그 사실을 미리 안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프랑스는, 전쟁의 천재라는 나폴레옹의 지휘와 경험이 있으면서도 여름이 끝날 무렵 허둥지둥 모스크바까지 감으로써 그들의 패망을 재촉한 것이었다.(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제3권 제2편 중에서)

히틀러와 나폴레옹의 패망을 바라보는 한 경험 많은 장군과 한 노련한 소설가의 시선이 겹쳐지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그것은 승리에 대한 무턱 댄 도취와 열망은 결국 걷잡을 수 없는 파탄을 향해 진군할 뿐이라는 사실을 적시하며, 그것은 결국 ‘불가피한 싸움’을 유발하게 되며, 평화나 협상의 제안 따위를 돌아볼 겨를을 주지 않음에 대한 경고로 기능한다. 어떤 정치적 논리도 배제된, 오직 장군의 본분(제너럴십)을 다하는 태도만이 진정한 승리를 이끌어올 수 있으며 수많은 생명을 지켜낼 수 있는 것이다.

제너럴십이란 ‘평화라는 이상’을 위해 우리가 요구하는 유일한 조건일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의 『회고록』에 “오늘날 한 지휘관이 종교적 진실(=정신적 가치)에 대한 지각을 갖고 있지 않다면, 큰 군대, 혹은 하나의 부대, 혹은 심지어 개개 병사들조차 고무할 수 없다고 나는 믿는다. 모든 리더십은 정신적 자질을 기초로 하며, 그 자질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뒤를 따르도록 고취하는 힘이다”(959쪽)라고 쓴 것이다. 우리가 누리는 평화가 진정 눈에 보이는 적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야수와 싸워 이긴 승리의 징표라면, 제너럴십은 전장의 장군만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긴 전쟁을 피할 수 없는 우리 각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이 아닐 수 없다. 『전쟁의 역사』가 다다르는 종착점은 바로 여기다.  [하창수 (소설가) / 삼성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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