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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영화 감상究

영화속의 전쟁 - 스탈린그라드 공방전

by 하승범 2007. 3. 15.

스탈린그라드 공방전은 제2차 세계대전의 최대 격전으로 기록된다.

1942년 여름 독일 제6군(사령관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장군)은 카스피 해와 코카서스 유전지대를 차지하려고 볼가 강으로 진격했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독일군 26만 명(일부 이탈리아·헝가리군 포함)은 오히려 소련군에 포위됐다. 탄약과 식량이 바닥난 1943년 2월 “마지막 순간까지 진지를 사수하라”는 히틀러의 명령을 무시하고 파울루스 장군은 항복했다. 9만1000명의 포로는 영하 30도의 살인적 추위에 시달리며 시베리아로 끌려갔다. 이 가운데 살아남아 훗날 독일로 돌아간 숫자는 겨우 6000명이었다.

6개월 동안의 스탈린그라드 공방전은 제2차 세계대전의 승패를 가른 전환점이다. 독일군은 30만 명 가까운 정예병력을 잃었고 그 뒤부터 공세다운 공세를 펴지 못하고 수세에 몰렸다. 희생자 규모도 커 전투원·비전투원을 합쳐 100만 명이 전투·굶주림·질병 등으로 숨을 거두었다(소련군 사망 50만 명, 독일군 사망 14만7000명).

전쟁사가들은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 제6군이 궤멸한 원인으로 ▲참모 출신으로 야전 지휘 경험이 부족한 파울루스 장군의 역량 부족 ▲군 전략가가 아닌 히틀러의 독선 탓에 후퇴전략을 세우지 못한 점 ▲주코프 원수 지휘 아래 스탈린의 이름이 걸린 도시를 지키려는 100만 소련군의 결사적 저항 등을 꼽는다. 19세기 초 나폴레옹 원정군을 괴롭힌 동장군도 병참선이 끊어진 독일군에 큰 시련이었다.

전투의 치열성과 희생 규모에서 전쟁사에 길이 남을 스탈린그라드 공방전을 다룬 명화로는 두 작품이 꼽힌다.  독일영화 ‘스탈린그라드’(Stalingrad·요제프 빌스마이어 감독·1993년), 그리고 다국적 합작영화인 ‘에너미 앳 더 게이트’(Enemy at the Gates·장 자크 아노 감독·2001년)다.

앞의 영화가 독일군 하급장교와 병사들의 눈으로 본 전쟁의 극한상황과 고난을 다뤘다면 뒤의 영화는 독일·소련 저격수의 대결이 줄거리다.

독일 쪽에서 패전 50년을 기념해 만든 ‘스탈린그라드’(156분)는 독일 젊은이들의 시각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비춘 영화다. 치열한 근접전의 긴박함과 참상을 그대로 보여 준다. 탱크에 깔려 죽는 독일군, 불붙은 탱크에서 뛰쳐나와 몸부림치는 소련군, 동료를 적으로 오인 사격해 괴로워하는 병사, 마취제도 없이 톱으로 다리를 자르는 군의관…. 영화가 아니라 마치 전쟁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착각마저 일으키게 한다.

영화에서 독일 젊은이들은 왜 싸우는가 회의를 느낀다. 히틀러를 위해서? 아니다. 영화 속에서 병사들과 고락을 함께하는 한 독일군 대위는 말한다. “나는 나치가 아니야.” 그는 전투가 끝나자 마지막 담배를 꺼내 병사들에게 먼저 한 모금씩 피우도록 건넨다. 근접전에서 가슴에 총을 맞고 어머니를 애타게 그리며 숨을 거두는 소련 병사, 눈길에 쓰러져 절망 끝에 “나를 죽여달라”는 독일 부상병은 모두 히틀러 나치 집단의 전쟁 광기의 희생자들이었다.

1939년 9월1일 나치 독일군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은 이른바 전격작전(blitzkrieg)으로 연전연승했다. 군 전략가들은 전투력의 집중 원칙에 따라 여러 전선에서 동시에 전쟁을 벌이는 것을 삼간다. 잇단 승리에 취한 히틀러는 일부 군 지휘부의 반대를 무시하고 소련을 침공(1941년 6월), 독일군의 힘은 나누어졌다. 그런 전략적 오판은 스탈린그라드(오늘날의 볼고그라드)에서의 참패 씨앗을 뿌렸다.

독일 영화 ‘스탈린그라드’와 함께 ‘에너미 앳 더 게이트’(Enemy at the Gates·장 자크 아노 감독·2001년·131분)는 스탈린그라드 시가전의 단면을 잘 보여 주는 영화다.

냉철한 눈길로 서로의 마음을 읽어 내는 두 저격수가 주인공이다. 실존인물인 소련의 전쟁영웅 자이체프(주드 로 분)와 가상인물인 독일군 저격 고수(高手) 쾨니히(에드 해리스 분)소령의 대결은 자이체프의 승리로 끝난다(소련군 저격수는 볼트 액션식 모신 나강 소총을, 독일군 저격수는 볼트 액션식 카르 모우저 소총을 사용했다).

볼가 강을 건너는 소련 보충병들을 향해 내려꽂는 독일 전폭기의 공습, 폐허로 변한 건물들 사이로 펼쳐지는 시가전, 그런 긴장 속에 피어나는 애틋한 삼각관계의 사랑 등은 두 시간여 동안 관객을 사로잡는다. 소련 쪽 현지 지도자 니키타 흐루시초프(보브 호스킨스 분)의 격정적인 연기도 볼만하다.

이 영화에는 몇 가지 잘못 표현된 부분이 있다.

앞머리에 소련 병사들이 독일군을 향해 돌격전을 펼친 뒤 물러나자 소련군 독전대가 아군을 향해 기총소사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소련병사들이 독일군의 총구 앞에 내던져진 총알받이 소모품처럼 그려졌다. 실제 전투에 참전한 러시아 퇴역군인들은 “참전용사들을 모독했다”며 영화의 러시아 상영을 반대했다.

소련군 지휘계통도 잘못 그려졌다. 영화에서는 정치국원 흐루시초프(1953∼64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가 마치 현지 사령관처럼 여겨진다. 실제 군 지휘선은 주코프 원수→바실레프스키 장군→에레멘코 장군으로 내려갔다. 정치국원에게는 야전 지휘권이 없다.

영화는 스탈린그라드 공방전을 저격수만의 전쟁처럼 그렸다. 그 공방전에는 독일군 30만 명, 소련군 100만 명이 참전해 볼가 강과 스탈린그라드 시내를 피로 물들였다. 현대 전쟁은 소설 ‘삼국지’의 장군들끼리 1대1로 맞붙는 칼싸움처럼 뛰어난 몇몇 개인의 대결이 아니다.

러시아가 전승 50주년을 기려 1995년 모스크바에 세운 전승기념관에 가 보았다. 그 거대한 건축물에는 전쟁에서 무공을 세운 장병들의 이름이 벽을 삥 돌아가며 새겨졌고 스탈린그라드 공방전과 베를린 공방전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그곳에 서니 시가전에 참전했던 병사들이 몰아쉬었을 거친 숨결이 느껴지는 듯했다. 기념관 어딘가에 저격수 자이체프의 이름도 적혀 있을 것이다.  <김재명 분쟁지역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유용원의 군사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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