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전쟁

워털루(Waterloo) 1970년 이탈리아, 소련

하승범 2006. 12. 23.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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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털루(Waterloo) 1970년 이탈리아, 소련

1815년 6월 18일 웰링턴(Arthur Wellesley, Duke of Wellington)이 이끄는 영국/네넬란드/벨기에/프로이센 등의 연합군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 1769~1821)의 프랑스군과 벨기에(Belgium) 중부의 한 지역인 워털루(Waterloo)에서 벌인 전투를 그린 전쟁영화.

감독 : 세르게이 본다르처크 Sergei Bondarchuk
출연 : 로드 스타이거 Rod Steiger  크리스토퍼 플러머 Christopher Plummer  버지니아 맥케나 Virginia McKenna  잭 호킨스 Jack Hawk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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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4년 모스크바로 부터 퇴각하고 파리를 함락당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는 '엘바'섬으로 유배를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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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5년 2얼 27일 엘바섬을 탈출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는 열광하는 군과 시민의 환영을 받으며 파리로 입성한다.  파리로 돌아온 나폴레옹은 국가와 군대를 조직하여 그의 적대세력인 플랑드르를 향해 진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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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는 반도전쟁의 영웅 '웰링턴'공작과 '철의 프로이센인'이란 별명으로 유명한 게브하르트 폰 블뤼허장군과 전투를 벌여야 한다.   그러나 이 당시 나폴레옹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매우 좋지 못한 상태였다.   때문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는 지휘상의 실수를 범하기 시작하였고 너무 많은 책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떠 넘기고 있었다.

나폴레옹은 벨기에를 선재 공격한 다음, 따로 따로 진군해 오는 영국군과 프로이센군을 각개격파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블뤼허의 '프로이센군'을 격파한다.  그리고 후퇴하는 프로이센군에 대한 추격을 퇴물장군 '그루시'에게 명령하고 3만여명의 병력과 백여대의 대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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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링턴공작은 93,000명의 영국군과 117,000명의 프로이센군과 벨기에, 네넬란드 등의 연합군을 지휘하여 워털루에서 강인한 승부근성으로 72,000명의 나폴레옹군과 일전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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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전투가 시작되고 나폴레옹의 용감한 프랑스군은 노쇠한 나폴레옹의 지휘를 받으며 탁월한 지휘력을 발휘하는 영국/프로이센연합군에 대한 공격을 감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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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날의 전투는 나폴레옹과 행운이 함께하지는 않았다.  프랑스군은 맹렬한 공격을 앞세워 영국군은 몰아붙였지만 그루시가 놓친 블뤼허의 '프로이센군'에 의해 측면을 공격당해 서서히 무너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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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두르슈미트의 '아집과 실패의 전쟁사'에서 워털루전투에 대해 "나폴레옹은 워털루에서 의욕과 열정을 잃어버린 부하 그루시 때문에 참패를 당했다.  나폴레옹도 신은 아니었기에 책임감 있는 부하를 필요로 했다.  오랜 인류의 역사가 보여주듯 인간은 열정이 빠진 책임감으론 아무런 창조적 성과를 이룰 수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 영화는 에릭 두루슈미트의 평가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듯 하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듯 한 역사를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다.  (스티븐의 영화보기)

나폴레옹 1세가 이끄는 12만여명의 프랑스군은 웰링턴장군이 이끈는 9만여명의 영국군과 12만여명의 프로이션군와의 워털루 전투에서 약 4만여명이 전사한다. 

이 전투가 끝난 이후 악성 베토벤은 멜첼의 의뢰를 받아 영국의 웰링턴장군을 칭송하는 "웰링턴의 승리 (Wellington's Victory)"를 관현악곡으로 작곡한다.  베토벤은 타악기와 금관악기를 적절하게 이용, 대포소리와 총소리를 묘사하고 프랑스와 영국 국가를 주제로 사용하여 실제 전투를 벌이는 것과 같은 음향적인 효과를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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