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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대전략 (Battle Of Britain) 1969년 영국

2차 세계대전-유럽

by 하승범 위드아띠 2007. 7. 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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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대전략 (Battle Of Britain) 1969년 영국

제2차 세계대전 초기, 프랑스에서의 전투를 마무리한 독일이 1940년 8월부터 10월까지 영국침공의 사전준비작업으로 시작된 독일공군에 의한 영국공격 즉 대규모 공중전이었던 '영국본토 공방전(Battle Of Britain)'를 그린 전쟁영화.

감독 : 가이 해밀톤 Guy Hamilton
출연 : 해리 앤드류즈 Harry Andrews  마이클 케인 Michael Caine  트레버 하워드 Trevor Howard  커드 저진스 Curd Jurgens 이안 맥쉐인 Ian McShane  케네스 모어 Kenneth More  로렌스 올리비에 Laurence Olivier  나이젤 패트릭 Nigel Patrick  크리스토퍼 플러머 Christopher Plummer  마이클 레드그레이브 Michael Redgrave  랄프 리차드슨 Ralph Richardson  로버트 쇼 Robert Shaw  패트릭 위드마크 Patrick Wymark  수잔나 요크 Susannah York 


영화는 프랑스의 항구도시 됭케르크(Dunkerque)에 독일군이 진주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1940년 5월 10일 독일군에 의해 본격적인 유럽전쟁이 시작되면서 독일군에 밀린 영국해외파견군과 프랑스군(약 11만명) 등 연합군 약 33만8,000여명은 1940년 5월 26일부터 6월 4일까지 도버해협을 통해 영국으로 소개된 '됭케르크(Dunkerque)철수작전'를 기적적으로 완료하였다.

영국공군 전투기사령부(RAF Fighter Command) 총사령관 휴 다우딩 공군대장(Air Chief Marshal Sir Hugh Dowding)은 패색이 짙은 프랑스 전투에 영국전투기가 더 이상 투입되지 않기를 희망하였다.  그는 독일의 영국침공을 막기 위해 반드시 영국공군이 최상의 전력을 유지하여야 한다고 믿었다.  그의 그런 실리주의적인 노력이 결국 독일의 영국본토침공을 막아내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1940년 6월 18일 영국수상 윈스턴 처칠은 영국하원에서 "이제 프랑스 전투는 끝났다. 나는 이제 브리튼전투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연설한다.  6월 14일 독일군이 프랑스 파리에 입성하고 6월 22일 프랑스 정부는 정식으로 독일에 항복한다.

히틀러는 영국과 우호적인 관계개선을 위해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벌이고 1940년 7월 19일 영국에 본격적인 화해제안을 하지만 영국수상 처칠은 이를 거절하고 결사항전을 준비한다.

그러나 영국의 상황은 최악으로 본토방어를 위해 노인과 병역면제자까지 긁어모아 편성한 향토의용군(Home Guard, Local Defence Volunteers)은 사냥용 엽총도 모자라 대부분 칼이나 곤봉 등으로 무장한 한심한 상황이었다.


독일공군(Luftwaffa)은 영국침공계획 '바다사자작전 (Operation Sealion (Seelöwe))'를 지원하기 위해 케셀링(Albert Kesselring)이 지휘하는 제2항공군(Luftflotte 2)과 슈페를레(Hugo Sperrle)가 지휘하는 제3항공군(Luftflotte 3)를 투입한다.

1940년 7월, 독일공군(Luftwaffa)은 전투기 1,100대, 경/중폭격기 1,400대, 급강하폭격기 400대를 보유하고 있었고 영국공군(Royal Air Force(RAF))은 전투기 591대, 폭격기 275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브리튼전투는 우선 '해협전투(카날캄프, Kanalkampf)'로 불리는 1940년 7월 10일부터 8월 초순까지의 1단계로 시작을 한다. 7월 10일 독일폭격기가 영국남부 해안도시에 대한 폭격하는 것을 시작으로 시작된 카날캄프 기간에 독일은 180여대 항공기가 격추되었고 영국은 전투기 70여대의 손실을 입는다.

영국공군 전투기사령부(RAF Fighter Command)는 영국본토를 위해 고도의 훈련을 받고 통합된 통제경보체계를 운영한다.   전투기사령부의 4개 군역 (북부의 13군역, 미들랜즈(Midlands)의 12구역, 남동부의 11군역, 남서부의 10군역)은 런던 억스브리지(Uxbridge)의 중앙사령부의 통제를 받았다.

특히 영국공군은 1937년부터 오크니제도(Orkney)에서 랜즈엔드(Lands End)까지 해안을 따라 줄지어 세운 '레이더경보감시초소' 50개소로 이루어진 '체인홍(Chain Home)'과 더불어 대공감시대(Observer Corps)를 운용함으로써 독일공군에 대한 경보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독일공군(Luftwaffa)은 영국침공계획 '바다사자작전 (Operation Sealion (Seelöwe))'를 위해 영국공군력을 완전히 괴멸하여야 한다는 1940년 8월 1일  히틀러의 '영도자 지령 17호'에 따라 8월 13일 대규모 공습작전인 '독수리의 날(아들러타크, Adlertag)'을 개시되어 독일공군의 대대적인 폭격이 영국각지의 공군기지를 뒤덮었다. 독일공군(Luftwaffa)은 독수리의 날 단 하루동안 1,485차례나 출격하였다고 한다.

영국공군의 전투기 비행장과 비행기 생산공장, 유류저장소 등에 대한 폭격을 목표로 하는 독일공군(Luftwaffa)의 독수리작전은 영국공군의 손실을 늘렸고 심각한 조종사부족사태 등의 사기저하를 불러왔다.


1940년 8월 24일 170여대의 독일공군의 폭격기들이 템즈강 연안의 비행기공장, 유류저장소를 목표로 야간공습을 시도하였다.  이 과정에서 2대의 독일폭격기가 항로를 유도하는 선도기에서 이탈하여 런던상공으로 비행을 하였고 영국방공포대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당황한 폭격기 조종사들은 미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고 목표지점으로 착각하여 런던시내에 폭탄을 투하하게 된다.

독일공군의 런던오폭사건에 대해 8월 25일 영국수상 윈스턴 처칠은 영국 폭격기 사령부의 사령관 존 옥슬리에게 베를린공습을 명령한다.

1940년 9월 4일 히틀러는 베를린 스포츠궁에서 열린 '긴급전당대회'를 소집하여 "영국이 우리 도시를 폭격한다면 더욱 강력한 보복을 할 것이다. 영국이 우리에게 떨어뜨린 폭탄의 100배, 1000배의 폭탄을 퍼부어 주겠다"라고 흥분하여 주먹을 휘둘러대며 연설하였다.


독일공군 총사령부는 1940년 9월 7일 영국공군의 전투기비행장에 대한 공습목표를 '런던폭격'으로 바꾸었다.  런던에 대한 독일의 대공습 '블리츠(Blitz, 독일어로 '벼락')'라 부르는 도시 대공습이 시작된 것이다.

'블리츠(Blitz)'라 불리는 영국런던공습(Battle of London)은 9월 7일부터 9월 30일까지 주야간공습으로 이어졌다.  영국공군의 입장에서는 '독수리작전'에 의해 괴멸상태로 빠져들다가 파괴된 기지와 항공기를 정비하고 조종사를 재배치하는 등 전력을 재구성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얻어 향후 전세를 바꾸는 귀중한 전력을 갖게 된다.

1940년 9월 7일 시작된 독일공군의 영국런던공습(Battle of London)은 일주일간 주야간으로 계속되었으며 2,000여명의 사망자와 수만명의 실종자, 부상자가 발생하였으며 런던시내는 참혹하게 파괴되었다.


독일은 영국의 대도시들을 폐허로 만들고 전의를 완전히 꺾은 다음 영국상륙작전을 감행할 예정으로 상륙작전을 준비한다.  영국은 '블리츠(Blitz)'가 시작된 9월 7일 독일군의 침공을 예상하고 독일상륙부대을 저지하기 위한 '크롬웰'작전을 준비한다.

한편 그러나 히틀러는 영국상륙작전을 9월 17일로 계획하고 괴링은 9월 15일 영국침공에 걸림돌이 되는 영국공군을 완전히 괴멸시키기 위한 독일공군의 대규모 공세를 감행한다.


"이제 마지막 일격을 가할 차례다. 영국공군의 잔존 전투기들을 모두 하늘로 끌어들여 그야마로 철퇴와 같은 공격으로 말살해 버리도록 하는 작전을 시작할 것이다." - 괴링 -

1940년 9월 15일 독일공군(Luftwaffa)은 400여대의 폭격기와 700여대의 호위전투기로 구성된 제1파 공격대를 영국으로 발진시키고 영국공군도 제11전투비행단의 24개 비행대대의 370여기 전투기를 해협으로 출동시킨다. 이른바 '영국 본토 항공전의 날 (Battle of Britain day)'이 시작된 것이다.  독일공군의 제2파 공격대가 예정보다 2시간 정도 늦게 공세에 나섰고 영국공군은 제12전투비행단 소속 5개 비행대대의 100여 전투기가 대규모 공중전에 투입된다.

1940년 9월 15일 독일공군은 39기의 폭격기와 17기의 전투기를 잃었고 수많은 폭격기가 피격으로 손상을 입었으며 20여기 전투기가 해협이나 프랑스해안에 불시착하였다.  반면 영국공군은 28기의 전투기를 잃었다.

 독일공군(Luftwaffa)은 영국공군의 대응에 크게 당황했다. 그들이 예측한 영국공군은 100여대도 안되는 전투전력을 겨우 유지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결국은 이날의 전투로 독일공군은 제공권을 장악하지 못했다는 사실과 영국공군 전투기사령부의 전투력이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독일공군의 에이스 아돌프 갈란트는 괴링이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대뜸 영국공군의 전투기 "스피트파이어 1개 비행대를 주십시오"라고 대답했다.


'영국 본토 항공전의 날 (Battle of Britain day)' 독일공군이 제대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고 판단한 히틀러는 '소련'침공을 위하여 1940년 9월 17일 '영국상륙작전'을 무기한 연기한다는 명령서를 프랑스 주둔 독일군사령부에 전달한다.  이로써 독일군의 영국침공작전이 취소되고 영국는 본격적인 독일침공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러나 독일공군은 동부전선으로 전진배치되기 전인 1941년 5월까지 영국 대도시들에 대한 야간폭격을 계속 진행하였다. - 스티븐의 영화보기

# 영국 본토 항공전의 날 (Battle of Britain day)'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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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6.18 08:43
    독일의 입장에서 영국을 그대로 놓아둔채 동부전선으로 전역을 확대한 것은 이후 역사적인 평가와 같이 중대한 실수였지요. 만약 영국과의 전쟁을 마무리(?)하고 소련과 전쟁을 수행했다면 그 결과가 어떠하였을지! 역사에서 'If'는 또 다른 재미를 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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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3.25 13:43
    극영화이긴 하지만 다소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입니다.
    영국과 독일의 다양한 항공기들이 등장하고, 영국의 독일공군 퇴치를 위한 노력을 생생하게 묘사. 항공영화 매니어들의 필독 영화가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