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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줄루(Zulu)`로 살펴보는 남아프리카 역사..

전쟁영화 감상究/전쟁역사 그리고...

by 하승범 위드아띠 2007. 2. 23.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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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줄루(Zulu)` (1964, 미국)
1879년 실제 벌어졌던 영국군과 줄루족과의 12시간에 걸친 혈전을 담은 전쟁영화!! 
감독 : 사이 엔드필드 (Cy Endfield)
주연 : 스탠리 베이커 (Stanley Baker), 마이클 케인 (Michael Caine), 잭 호킨스 (Jack hawkins)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최초 거주자는 산족과 코이코이족(호텐토트)족이었다.  이 유목민들은 서기 300년경에 북동족에서 반투어계통의 흑인민족들이 들어오기전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여러지역에서 살고 있었다.

반투어계통의 민족들은 이들을 남서쪽에 있는 지금의 케이프와 나미비아에 제한시키고, 자신들은 내륙에 정착하였으며 그들은 문화적으로 다양하지만 고대 언어에서 변형된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였다..

이곳에 최초로 도착한 유럽인은 포르투칼인으로 1488년 바르톨로뮤 디아스(1450~1500)가 `폭풍우의 곶` (희망봉)을 발견하였으며 9년후 1497년 겨울 바스코다 가마(1469~1524)가 나탈을 발견하였다.

1652년 네덜란드는 케이프타운에 `동인도회사` 선박들의 보급기지를 세웠고 얀 판리벡의 지휘하에 네덜란드사람들은 요새를 세웠다. 네덜란드의 농부들(보어인)은 노예 노동력의 지원을 받아 사유지를 만들었다.

1795년에 유럽인 정착자수는 약 2만명으로 증가했으며 그해 영국은 케이프를 점령하여 프랑스의 손길을 막았다. 이곳은 1803~1814년에 네덜란드에 반환되었다가 그후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네덜란드 정착자들(보어인)은 영국의 지배에 분개하였고, 특히 1834년 노예제도가 페지되자 많은 농부들이 파산을 하였다.  이에 많은 보어인들이 내륙의 새로운 땅을 찾아가기로 결정하였다. 1836년 수천명이 마차를 이용하여 북쪽으로 떠나 그레이트 트랙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결국 그들은 여러 아프리카부족들, 특히 딩간이 이끄는 줄루족과 은에베레(마타벨레)족과 충돌하였다. 1838년 블러드강전투에서 보어인들은 거대한 줄루족부태를 격퇴하고 `나탈`에 자리를 잡고 후에 오렌지 자유주와 트란스발을 세웠다.  1843년 영국은 `나탈`을 합병하였으나 그후 12년이 자나 다른 두 지방의 독립을 승인하였다.

1870년 킴벌리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되어 영궁은 그 지역과 트란스발(1877년)을 합병하였으며, 보어인을 학대하였다. 1879년 세테와요가 지배하는 줄루왕국을 꺾으려던 영국의 시도는 `나탈`지방의 이산들와나에서 꺾이고 말았다..줄루족의 방어가 트란스발 보어인을 자극하여 188~1881년에 일어난 제1차 보어전쟁에서 보어인들은 영국을 몰아내게 된다.

1886년 요하네스버그 근처 윗워터즈래드에서 금이 발견되자, 케이프식민지의 영국수상인 세릴 로즈(1853~1902)는 그 영토를 획득할 방법을 모색하였다.  1895년 린더 제임스(세릴 로즈의 친구)가 트란스발을 침략하였으나 파울로 크루거(1825~1904)가 이끄는 보어인에 의해 분쇄되었다. 결국 1899년 트란스발과 오렌지자유주는 영국에 선전포고를 하며 제2차 보어전쟁이 발생하지만 1902년 영국의 승리로 끝난다.

영국은 1906~1907년 양국가의 자치권을 승인해 주었고, 1910년 백인에게 정치력을 부여한 헌법에 따라 4개 지방이 남아프리카연방을 이루었다.  남아프리카연방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을 위해 싸웠으며,, 1916년 독일령 남서아프리카(나미비아)를 획득했다. 1920년 국제연맹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이 지역의 위임통치권을 주었다. - 스티븐의 영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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