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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화 속으로 (71-Into the Fire) 2010년 한국

한국전쟁

by 하승범 위드아띠 2010.06.05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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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화 속으로 (71-Into the Fire) 2010년 한국

한국전쟁 당시 포항여중전투에 참전한 육군 3사단 소속 학도의용군 71명의 실화를 기반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입혀 만든 전쟁영화.

> 포항여중 전투 : 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 8월 10일~11일, 포항여중에서 육군 3사단(사단장 김석원준장) 소속의 학도의용군 중대 2개 소대(1소대, 배재중 유명욱 / 2소대, 서울 중앙대 김일호)가 북한인민군 766부대과 벌인 전투이다. 이날 전투로 학도병은 48명 전사, 13명 부상, 10명 포로가 되는 큰 희생을 치른다. 한편 이들이 12시간 동안 북한인민군의 진격을 저지하며 치른 희생으로 육군 3사단과 주요 기관 등이 무사히 형산강를 건너 구룡포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감독 : 이재한
출연 : 차승원 권상우 T.O.P(백뱅, 최승현) 김승우 박진희 


(포항여중전투에서 전사한 이우근학생이 절박했던 순간 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쓴 편지 내용)

어머니. 적은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너무나 가혹한 죽음이었습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욱이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머님께 알려드려야 내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내 옆에서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빛 아래 엎드려 있습니다. 적은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언제 다시 덤벼들지 모릅니다. 적병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71명 입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하면 무섭습니다.
 
어머니,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손수 빨아 입었습니다. 물내 나는 청결한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두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어머님이 빨아 주시던 백옥 같은 청결한 내복과 내가 빨아 입은 내복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청결한 내복을 갈아입으며 왜 수의를 생각해 냈는지 모릅니다. 죽은사람에게 갈아 입히는 수의 말입니다.
 
어머니,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많은 적들이 그냥 물러 갈 것 같지는 않으니까 말입니다.

어머니, 죽음이 무서운 게 아니라, 어머님도 형제들도 못 만난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가겠습니다. 어머니, 이제 겨우 마음이 안정이 되는군요. 어머니, 저는 꼭 살아서 다시 어머니 곁으로 가겠습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 …그럼…


> 포항지역 전투 (1950.8.5~8.20) : 한국군은 대구 동북방의 낙동강 방어선을 방어하기 위해 1군단 예하 8사단과 수도사단을 중동부지역에, 3사단을 동해안지역에 배치하여 북한군을 저지하도록 한다. 이에 따라 8사단은 경북 의성일대에 비치되어 안동-영천간 도로를 방어하고 수도사단은 황학산(782고지) 전방 길안에서 의성과 청송 사이의 접근로를 방어하도록 편성된다. 한국군 3사단은 영덕을 방어하며 북한군의 동해안 진출을 저지하는 임무가 부여되었다.

한편 대구 동북부지역을 공격하던 북한군 2군단 예하 1사단, 13사단, 15사단을 대구지역에, 8사단을 안동-의성-영천축선에, 12사단을 청송-안강-경주축선에, 5사단을 포항에 투입한다.  더불어 태백산으로 침투시켜 보현산(1124고지)과 비학산(768고지) 일대에서 활동하던 766부대로 하여금 12사단과 5사단의 공격작전을 지원하도록 한다. 그리하여 1사단, 13사단, 15사단은 대구 정면과 측방을 공격하고, 8사단은 대구 측후방을 공격하며, 12사단과 5사단은 포항축선을 공격하도록 하여 부산으로 진출하려는 계획이었다.

북한군은 낙동강 방어선 전역에서 8월 5일 공격을 개시한다.  북한군 8사단의 공격을 받은 한국군 8사단은 의성으로 철수하고 의성 북쪽 고지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편성하여 8월 12일까지 전투를 벌인다. 이 과정에서 한국군 8사단은 북한한 8사단 82연대 및 83연대 1개 대대병력을 섬멸하는 전과도 올린다. 큰 피해를 입은 북한군 8사단은 의성 남쪽에서 부대를 재정비하면서 영천 진출을 포기한다.

북한군 12사단은 수도사단을 전후방에서 동시에 공격한다. 이런 북한군의 기습으로 수도사단의 방어선이 와해되어 의성으로 철수한다. 이에 북한군 12사단은 8월 9일 기계를 점령한 후 보현산 일대에서 활동하던 766부대와 합류하여 포항으로 진출할 태세를 갖춘다.  수도사단 방어실패에 대한 지휘책임을 물어 육군본부는 8월 7일부로 사단장 김석원 준장을 해임하고 백인엽 대령을 사단장으로 임명한다.

동해안을 방어하던 한국군 3사단도 북한군 5사단의 대규모 공격을 받는다. 유엔군 공군이 화력지원에도 불구하고 방어선이 무너지고 사단지휘부가 후방에 침투한 북한군 박격포 공격을 받는 등 방어선이 붕괴된다. 이로 인해 당시 3사단장 이준식 준장이 교체되어 전임 수도사단장 김석원준장이 부임한다. 북한군과의 치열한 교전을 치루며 방어작전을 수행하지만 실패하여 8월 8일 한국군 3사단은 강구 남쪽 장사동으로 철수한다. 

8월 8일 북한군 5사단은 한국군 3사단 22연대를 공격한다. 많은 사상자가 발행하고 탄약마저 떨어진 22연대는 남쪽으로 분산 철수한다. 이 과정에서 오십천교를 건너 남쪽으로 철수한 22영대장 강태민중령은 북한군 추격을 차단하기 위해 오십천교 폭파를 명령한다. 8월 9일 05시 오십천교가 폭파된다. 이 때문에 오십천교 북방에서 전투을 벌이던 22연대 1대대 병력이 제대로 강을 건너지 못해 많은 피해가 발생한다. 오십천교는 사단장의 명령에 의해 폭파가 가능하지만 일선 연대장이 불법 명령을 내린 것이다.  이로 인해 22연대장 강태민중령은 해임과 동시에 군법회의에 회부되었다.

8월 10일 북한군 5사단이 한국군 3사단 후방으로 우회하여 홍해지역에서 포항으로 접근함으로써 한국군 3사단의 퇴로가 차단될 위기에 처한다. 유엔군은 포항과 영일비행장 방어를 위해 미군 2보병사단의 9연대 3대대와 포병으로 '브레들리 특수임무부대'를 편성하지만 일부 병력이 포항지역에 침투한 북한군 766부대가 포항서쪽도로를 차단함으로써 영일비행장 방어임무에 투입되지 못한다.

한국군 1군단은 포항지구 전투사령부(이성규 군단참모장)을 편성하여 학도병 등으로 새로 편성된 25연대, 26연대, 17연대 등을 배속하여 북한군 12사단이 점령한 기계를 탈환하도록 조치한다. 8월 11일 포항지구 전투사령부와 수도사단은 기계 탈환작전을 진행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한편 8월 11일 새벽, 북한군 766부대와 5사단 일부 병력이 포항에 진입한다.  당시 포항에는 학도의용군과 청년방위대 등로 구성된 2개 소대병력만이 경계하고 있었고, 3사단 후방지휘소, 해군경비부, 공군지상부대가 위치하고 있었다. 장갑차 5대를 앞세우고 공격한 북한군을 맞아 포항경비병력은 포항여중에서 근접전을 전개하였으나 북한군 정규병력의 진입을 저지하지 못했다. 한국군 3사단 후방사령부는 우선 군수품을 구룡포로 옮긴 다음 포항 남쪽 형산강 교량에서 재정비한다.

한편 포항이 실함되고 영일비행장에 북한군에 위협을 받자 유엔군은 포항 일대에 대한 공중, 함포사격을 강화하고 영일비행장으로 미 2보병사단 9연대 전차소대를 추가로 배치하여 방어를 강화한다.  한국군 17연대를 포항 남서쪽으로 진출시켜 포항지역 위기를 진정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월 13일~14일 지상군 작전을 지원하던 45대의 F-51전투기로 구성된 40전투비행대대가 영일비행장에서 철수한다.

한국군은 8월 13일 8사단이 보현산 일대에서 진지를 편성하도록 하고 17연대는 해병대를 지원받아 안강 서북쪽으로 진출하여 8월 16일 포항 서남쪽 고지를 탈취한다.  8월 18일 수도사단은 기계 지역에 있는 북한군 12사단을 공격하여 기계 북쪽 비학산(763고지)로 퇴각시킨다. 북한군 12사단은 기계전투에서 입은 손실로 766부대를 흡수하고 2,000여명의 신병을 보충받는 등 재정비 노력을 기울인다.

한편 포항 북방 장사동에서 퇴로가 차단된 한국군 3사단은 8월 17일 구룡포로 철수하여 신병 등으로 재편성을 완료하고 8월 18일 포항 남쪽으로 진출한다. 8월 18일 민부대는 미 2보병사단 '브레들리 특수임무부대'의 전차소대의 지원을 받아 포항탈환작전을 수행하여 8월 19일 탈환된 포항을 한국군 3사단에 인계한다. 8월 21일 북한군 5사단이 포항 북방에서 공격을 수행하지만 한국군 3사단에 의해 격퇴된다.  이렇게 북한군의 8월 공세는 8월 20일을 전후하여 일단 종료된다. 낙동강 방어선 동북부지역에서 북한군의 진출은 왜관-다부동-의홍-기계-포항선에서 저지된 것이다. <출처: 한민족전쟁사, 온창일, 집문당 - 재편집>


이 영화는 2010년 10월 14일~24일 개최되는 '하와이 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공식 초청되었다.
> 6월 16일 정식 개봉 첫날 관객 11만명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유료 시사회 관객까지 포함하면 전국에서 24만 9223명이 이 영화를 보았다 (2010-06-18) 그리고 개봉 15일 만에 관객수 200만명을 돌파하였다 (2010-07-02)
> 7월 30일 미국 주요 14개 도시에서 동시에 오픈할 예정이다 (2010-07-03)

조국을 위해 총을 들고 일어선 학도의용군, 그러나 그들은 단지 학생이고 소년일 뿐이었다.  결코 영웅은 아니었다. 이 영화는 그런 점을 잘 그려내고 있다. 그들의 충격과 공포, 쌓이는 동료애 등이 자연스럽게 그려냈다.  특히 불량스런 표정의 권상우보다는 다양한 내면의 감정을 호소력 있는 눈빛으로 소화하며 리더로 성장하는 모습을 입체적으로 보여준 최승현(T.O.P)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 스티븐의 영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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