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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에겐 시계가 있지만 우리들에겐 시간이 있다

함께하는 영화話

by 하승범 위드아띠 2014.02.16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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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중대 (9-Ya Rota, The 9th Company, 2005년, 러시아) 


소련의 아프간 전쟁 (1979년~1989년)을 배경으로 군에 입대하여 군인이 되는 젊은이들의 모습과 그들이 냉혹한 전쟁에 투입되어 겪게되는 상황을 그린 영화이다. 실화를 배경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감독 : 표도르 본다르추크 Fyodor Bondarchuk

출연 : 표도르 본다르추크 Fyodor Bondarchuk, 알렉세이 차도프 Aleksei Chadov, 미하일 에브라노브 Mikhail Evlanov, 이반 코코린 Ivan Kokorin, 아르티옴 미할코프 Artyom Mikhalkov, 콘스탄틴 크류코프

Konstantin Krukov


"아프가니스탄"은 '침략군의 무덤'이라 불린다.


1978년 쿠데타로 수립된 아프가니스탄 공산정권에 대해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의 영향을 받은 이슬람 반정부 무장투쟁이 시작된다. 아프가니스탄 공산정권은 소련에 지원을 요청한다. 1979년 12월 소련은 소련군 5개 사단을 동원하여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여 친소정부를 수립하고 소련 위성국으로 편입시킨다.


이후 소련군은 아프가니스탄 내 종교적 열정과 복수심에 불타는 이슬람 저항세력인 '무자헤딘 (mujāhidīn)'과의 긴 전쟁을 벌이게 된다. 결국 소련군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지 10년 만인 1989년 2월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 철수한다. 9년 4개월의 아프간 전쟁에서 소련군은 15,000여명이 전사하고 40,000여명이 부상을 당하는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소련 연방을 이 여파로 체제 해체의 길을 걷는다. 물론 아프가니스탄 민중들이 겪었던 고통과 피해는 이보다 심했다.


아프간의 험준한 지형과 외세에 대한 강한 거부감은 이 지역을 끈질긴 저항의 근거지로 만들었다. 여러 부족으로 구성된 아프간 사회는 각 종족 간 독립성이 강하고 '파슈툰왈리'라는 엄격한 전통을 지키고 있다.'파슈툰왈리'란 자신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복수를 했고, 자신이 못 다한 복수의 의무는 대를 이어서 지킨다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던 19세기 영국군도 20세기 소련군도 21세기 미국군도 치욕스럽게 그 곳에서 쫓겨났다.


외세에 저항하고 이슬람 가치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사기 충천했던 10만 '무자헤딘 (mujāhidīn)'은 미국, 중국,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는다. 이 기간 미국은 미 중앙정보부(CIA) 요원을 파견하여 군사작전을 지원하고, 군자금을 지원하여 중국에서 무기를 구입할 수 있도록 무자헤딘을 지원했다. 특히 미국은 1986년부터는 스팅거 등 대공미사일을 무자헤딘에게 제공함으로써 소련군의 강력한 공격용 헬기를 제압할 수 있었다.



영화에서 제9중대를 공격하는 무자헤딘의 앞에는 항상 이 사진의 '백인'이 등장한다. 무자헤딘의 공격 장면에는 항상 존재하며 죽지도 않는다. 이는 감독이 당시 무자헤딘을 지원했던 '미국' 중앙정보부(CIA)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무자헤딘은 미국의 지원으로 부족함이 없는 군사력으로 소련군을 괴롭히고 압박하여 결국 승리하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무자헤딘'에 대한 군사적 지원이 자신들에게 부메랑이 되어 되어 현재의 미국을 괴롭히고 있다. 역사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으며 렬국 우리 스스로 우리를 위한 자주국방을 확립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 9중대는 우리의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영화에서는 모든 중대원들이 전사하고 오로지 한명만 생존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실제 3234 고지전투에서는 39명의 중대원들이 250여명의 무자헤딘을 맞아 이틀간 벌어졌으며 중대원 중 6명이 전사했다.


아프간 파병 소련군은 1987년 11월부터 1988년 1월까지 파키스탄 국경 인근 도시 코스트 (Khost)에 무자헤딘으로 부터 고립되어 있는 주민과 아프간 정부군을 지원하기 위해 가데즈 (Gardez)에서 부터 보급선을 구축하는 작전을 벌인다. (Operation Magistral)


소련 제345 독립공수연대(345th Independent Guards Airborne Regiment) 제9중대원 39명은 그 보급선의 한 지점이었던 3234 고지에 배치되어 수송차량 등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임무를 수행하던 중 1988년 1월 7일 ~ 8일 9중대원들은 250여명의 무자헤딘의 공격을 받는다. 이 고지전투에서 소련군은 6명이 전사하고 28명이 중상당하며 무자헤딘은 200여명이 전사한다. 이 고지전투를 각색한 것이 영화 '제9중대'이다.  



이 영화는 베트남전쟁에 참전하게 되는 병사들을 다룬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풀 메탈 자켓 (Full Metal Jacket, 1987년, 미국)'과 비슷한 구성을 갖는다. 영화의 반은 신병훈련소에서 젊은이들이 혹독한 교관과 고된 훈련을 통해 군인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다룬다. 중반 이후는 아프간에 파병되어 전투를 치르며 진짜 군인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소련군 40군 (Soviet 40th Army)의 보리스 그로모브 장군(General Boris Gromov)의 코스트 (Khost)를 구원하기 위해 연결한 가데즈 (Gardez)까지의 보급선 작전 (Operation Magistral)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이 작전의 효과는 크지 않았다.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떠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을 떠난다.


소련군이 떠난 아프가니스탄은 카불 나지불라정권과 무자헤딘 사이의 내전으로 돌려진다. 다른 한편으로 무자헤딘 내부도 시아파, 수니파, 온건파, 강경파 등 정통성과 주도권 분쟁이 격화된다. 이런 혼란스런 아프가니스탄에서 1994년부터 '탈레반'이 두각을 나타낸다.



"우리들 대부분은 그 당시의 사정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2년뒤 우리가 목숨을 바쳐지키고자 했던 소련연방공화국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을 모른다. 그리고 더이상 강대국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도... 새로운 삶은 우리를 무참히 버렸다.... 우리는 그뒤로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우리는 심지어 위대한 군대가 혼란속에서 우리를 잊고 있었다는 것을 모른다."" 이 머나먼 하이랜드에서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을 떠난다. 우리 9중대는 승리했다"


파키스탄 난민캠프에서 생겨난 '탈레반'은 뛰어난 무기와 풍부한 자금을 배경으로 1996년 수도 카불을 장악하고 2000년 말에는 전국의 95% 이상을 제압했다. 이런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의 다수파 주민 '파슈툰'인의 정권을 세우고 중앙아시아로 통하는 안정된 통로를 확보하려는 의도을 갖고 있던 파키스탄 군대와 정보기관의 지원을 받았다. 당시 미국도 친소 카불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탈레반을 지원했다.


그러나 2001년 10월부터 12월까지 미군과 영국군은 알카에다와 알카에다를 지원하는 '탈레반'에 대한 대대적인 폭격을 가한다. 이는 2001년 9.11 테러를 자행한 알카에다와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은 알카에다 테러범 훈련소가 있고 또 빈 라덴과 알카에다 조직원를 보호하는 탈레반과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항구적 자유작전 (Operation Enduring Freedom)> 미국이 지원한 탈레반이 미국의 등뒤에서 비수를 들이댄 격이다.


미국은 탈레반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과거 무자헤딘의 한 분류인 아프간 '북부동맹'을 지원한다. 북부동맹은 구소련령 이슬람국가에 이슬람 원리주의의 영향력 확산을 막으려는 러시아의 지원도 받았다. 마침내 북부동맹은 수도 카불과 남부 칸타하르를 점령하여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린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전역에는 아직도 탈레반세력이 영향력을 끼치고 있고 미국 등 연합군이 이들과 기나긴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2014년 아프가니스탄을 철군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동안 미국은 강력한 군사력으로 아프가니스탄 내 탈레반 세력을 소탕하려했지만 성과는 미흡한 편이었다. 테러와의 싸움에서 표적이 된 아프가니스탄이 올바로 제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과연 미국이 떠날까? 그 자리에 러시아나 파키스탄 등은 어떤 입장과 욕심을 보일까? "당신들에겐 시계가 있지만 우리들에겐 시간이 있다"는 탈레반 지도자의 말이 아프간 현실을 이해하게 한다. () <이 글은 2013년 10월 씨알뉴스(www.crnews.co.kr) 지식나눔에 기고하였던 글입니다.>



이 영화를 감독한 표도르 본다르추크 (Fyodor Bondarchuk)는 '전쟁과 평화 (Voyna I Mir, War And Peace, 1967년)' '워터루 (Waterloo, 1970년)' 등을 감독한 세르게이 본다르추크 (Sergei Bondarchuk)의 아들이다. 


표도르 본다르추크 감독은 영화에서 '호콜 중사'역으로 직접 출연한다 <좌측 위 사진>. 그이 아버지 세르게이 본다르추크 감독도 영화 '전쟁과 평화'에서 '귀족 피에르'역으로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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