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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태평양

800 (八佰 , The Eight Hundred) 2020년 중국

by 하승범 하승범 2021.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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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 (八佰 , The Eight Hundred) 2020년 중국

1937년 10월 말, 중일전쟁 초기 중국 국민혁명군 제88사단 제 524연대 제1대대 소속으로 2만 명의 일본군으로 부터 상하이를 지키기 위한 사투를 벌인 800명의 이름없는 병사들의 실화를 기반으로 한 전쟁영화이다.

실제 전투에 참가한 병력은 452명으로 4일 간의 전투에서 양측 사상자는 중국국 47명, 일본군 200명이었다.

중일전쟁 당시 거의 유일한 항전의 기억 "상하이 사행창고 보위전(1937년 10워 26일~11월 1일)"을 다룬 영화로 과대 포장된 '중국 국뽕영화'로 대표적인 '중국 애국주의' 영화의 하나이다. 중국의 체제 선전용 '주선율(主旋律) 영화'는 중국에서 사회주의 가치를 고취시키고 정부 정책과 체제 옹호를 목적으로 제작되는 영화를 말한다. 

한 줌 흙으로 돌아갈 때 난 미소 짓고 있으리라...
When I turn to dust, you will see my smile ...

감독 : 관후 Hu Guan 管虎
출연 : 왕첸웬 (Wang Qian Yuan 王锦鹏) 어우 하오 (Hao Ou 欧豪) 두순 (Du Chun 杜淳) 장유호 (Youhao Zhang 张宥浩) 당예흔 (Tang Yi Xin 唐艺昕) 강무 (Jiang Wu 姜武) 장역 (Zhang Yi 张译) 야오천 (Chen Yao 姚晨)


1937년 일본은 베이징 루거우차오 사건(노구교 사건, 1937년 7월 7일, 卢沟桥, 盧溝橋)을 빌미로 중일전쟁(中日戰爭, 1937년 7월 ~ 1945년 9월)을 시작하여 베이징과 텐진을 장악한 후 8월 상하이에 진격한다.. (상하이 전투 (1937년 8월 13일 ~ 1937년 11월 26일)

한편 중국은 8월 초 최정예 독일식 사단인 제87사단, 제88사단을 포함한 제9집단군(사령관 장츠중) 5만여명을 상하이 인근지역으로 파병하여 일본 조계지를 점령하고자 한다. 상하이 남쪽 일본 조계지에 배치되어있던 일본해군 특별육전대와 민간인 의용군 연대는 1937년 8월 13일 중국 관할구역을 침공하면서 전투가 시작된다.

중국군의 격렬한 항전으로 고전하던 일본군은 8월 23일 일본군 3사단과 11사단이 상하이에 상륙하여 전투에 투입된다. 하지만 이 또한 힘겨운 전투가 되어 이후 추가로 3개 사단이 투입되는 등 총 8개 사단, 6개 여단 약 30여만명의 병력을 상하이 전투에 투입하여 힘겹게 상하이를 점령한다.

당시 중국은 난징 불평등조약(1842년 8월 29일 청나라-영국 간 조약, 南京條約, 장닝 조약 (江寧條約))에 따라 홍콩이 영국에 넘어가고 상하이와 광저우가 개방된다. 특히 상하이는 황푸 강 지후 쑤저우 강(蘇州河, 우쑹 강)을 경계로 남쪽의 영국이 치외법권을 행사 중인 "조계 지역"과 북쪽은 전혀 다른 세상이 되어 있었다.

상하이 남쪽은 '동방의 파리'로 불리우며 외국인과 중국 상류층이 향연과 도박을 벌이는 동안 상하이 북쪽에선 살육에 가까운 일본군의 공격이 진행된다.

이 때 상하이 북쪽에서 일본군의 진격을 막는 마지막 보루가 된 6층 짜리 물류창고 건물 "사행창고"(전쟁 전 외국은행 네 곳이 같이 쓴 창고)가 영화의 주 무대이다.


하지만 중국 국민혁명군 제88사단 제 524연대 제1대대 소속 병사들이 사투를 벌인 이 전투는 서방 언론에 중계되어 중국 국민당의 국제여론 호소용이었고 무명용사들의 희생으로 한 애국심 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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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전쟁영화는 제작한 국가의 역사적 사실을 근거할 경우 당연히(?) '국뽕' 영화이다. 이 영화 또한 다르지 않는다. 하필 영화가 상영된 시점 등이 중국 시진핑이 중화사상을 전세계에 강요하는 중국 애국주의가 만연한 시기이다.

그것을 걷어 낸다며 그냥 그 나라의 애국 전쟁영화이다. 하지만 지금 시진핑의 중국은 우리에게 정치 경제 문화 등에서 위협이다. 그래서 이런 영화가 경계된다.
() 2021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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