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함 야마토(Yamato, 大和, 6만5,000톤 급 / 만재톤수 7만2,000톤)는 자매함 ‘무사시(武藏)’와 함께 일본이 건조한 가장 큰 전함으로 세계 최대의 18.1인치(460mm) 함포 9문이 장착되어 있었다. 이 전함은 1941년 12월 16일 일본 히로시마(廣島)현 꾸레(吳)에서 건조 완료되어 취역하였고, 유명한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 연합함대 사령관의 기함이었다.
1945년 4월 1일 미군이 일본 오키나와에 상륙을 개시한다. 미군은 전쟁을 조속히 마무리하기 위하여 오키나와를 1개월이내의 단기간에 함락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오키나와를 사수하라는 일본 최고사령부의 명령으로 일본군과 오키나와주민은 자살특공작전을 결행하며 결사항쟁을 계속하게 되어 오키나와(沖繩) 전투(Battle of Okinawa)는 6월 23일 섬 남단의 우지시마중장의 잔존부대가 자살하고 섬멸될 때까지 3개월간 계속되었다. 이 전투로 일본군 6만5천여명과 오키나와주민 9만4천여명이 전사하였으며 미군도 1만2천5백명이 전사하고 3만6천명이 부상하는 피해를 입었다.
참고로 우시지마 미쯔루 중장의 제32군 사령관이 제24사단과 제62사단, 제44독립혼성여단, 제27전차연대 등 총 67,000 여명의 육군이 오끼나와에 집결했습니다. 여기에 해군부대 9,000 명을 더하여 정규군의 숫자는 76,000 여명이었으며 이와는 별도로 오끼나와 주민들로 이루어진 방위대가 있었는데 이들의 병력은 약 20,000 명 정도였고, 그 외에도 4,000 명 정도의 섬 주민이 행정이나 보급 등 일본군의 지원업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제32군의 총병력은 약 100,000 명을 헤아렸습니다. 이들은 강력하고 충분한 무장을 하고 있었으며 해안방어를 포기하고 섬의 남쪽에 있는 슈리를 중심으로 토치카와 포병화력으로 견고한 방어선을 형성, 최대한 시간을 끄는 지연작전을 전개하였고 제5항공함대 우가끼 마또메중장의 지휘하에 가미가제특공대가 투입되었다.
일본군부는 일본본토로 향하는 미군의 전력을 약화시키고 본토진격을 늦추기 위해 '결사항전'의 '옥쇄'를 명령하였으며 많은 일본군과 오키나와주민이 '천황제'와 '집단자결'이라는 허구적 이데올로기에 희생되었다. 이러한 일본군부의 의도는 '미군'에게 있어 '충격'으로 전달되었다. 오키나와전투를 통해 미국은 일본본토상륙시에 '일억옥쇄'라는 실제적인 '위협'을 경험하게 됨으로써 일본에 대한 전쟁수행방법의 전략적인 수정을 하게 된다. 즉, 전쟁의 희생을 줄이고 조기 종결을 위한 '원자폭탄'의 사용과 일본국민의 효과적인 통치를 위한 '천황'의 전범분리정책이 그것이었다.
필리핀 레이트해전 이후 히로시마 꾸레항에 머물고 있던 '전함 야마토(Yamato)'는 오키나와에 상륙한 미군선단을 공격하기 위한 자살작전 '텐고'를 위해 1945넌 4월 6일 6대의 순양함과 함께 목적지에 도착할 분량의 연료만을 싣고 출항한다. 4월 7일 12시 경 '전함 야마토(Yamato)의 행적을 추적하던 미군은 항공모함 베닝턴과 호넷에서 132대의 전투기, 50기의 급강하폭격기, 98기의 뇌격기를 발진시켜 '전함 야마토(Yamato)'선단을 공격한다. 교전이 시작되고 2시간 만에 6척의 순양함이 침몰하고 14시을 넘기자 '전함 야마토(Yamato)'도 14발의 어뢰와 수십발의 포탄을 맞고 폭발, 침몰한다.
당시 3,000여명의 '전함 야마토(Yamato)'의 승무원 중에서 269명만이 생존했는데 이 교전에서 미군은 단 12명만이 전사하였다. 영화 '남자들의 야마토 (男たちの大和, Yamato, 2005년)에도 표현되고 있지만 결국 '전함 야마토(Yamato)'는 '순전히 죽기 위해' 출항한 것으로 일본군부의 전쟁관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명령이었으며 이런 '전쟁관'과 일본제국의 자존심을 위해 전함 야마토와 함께 수천명의 젊은이들을 수장시킨 것이다.
일본군부는 1941년 1월 일본군이 전장에서 지켜야 할 행동규범 및 전튜규범으로 '전진훈(戰陣訓)'을 공포하여 실행한다. 이 '전진훈(戰陣訓)'은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군인 최고의 명예로 강조하여 개인의 존엄을 무시하고 군국주의 이데올로기를 강조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전쟁기간동안 일본군은 '비합리적인 전투행동'이나 '명령'에 대한 맹목적 복종을 하게되고 '오키나와전투'에서 처럼 각 동굴에서 '서로 죽이고 죽는 집단자살'을 서슴치 않고 잔혹한 군인들을 만들어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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