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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The Downfall, Der Untergang) 2004 독일

2차 세계대전-유럽

by 하승범 위드아띠 2014.02.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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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The Downfall, Der Untergang) 2004 독일

1945년 아돌프 히틀러가 자살하기 전 베를린의 지하 벙커에서 보낸 12일 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이 영화의 원작은 독일의 역사학자 '요아킴 페스트'가 펴낸 동명의 책 <히틀러 최후의 14일>과 더불어 사망 직전까지 히틀러와 함께 했던 비서 '트라우들 융게'의 회고록 <히틀러, 여비서와 함께한 마지막 3년>이다.

Also Known as ; 히틀러와 제3제국의 종말 (The Downfall: Hitler And The End Of The Third Reich )

감독 : 올리버 히르비겔 Oliver Hirschbiegel
출연 : 브루노 간츠 Bruno Ganz, 알렉산드라 마리아 라라 Alexandra Maria Lara, 코리나 하포치 Corinna Harfouch, 울리히 마테스 Ulrich Matthes, 율리안느 콜러 Juliane Kohler, 헤이노 페르치 Heino Ferch, 크리스찬 버켈 Christian Berkel, 마티아스 하비흐 Matthias Habich, 토마스 크레취만 Thomas Kretschmann, 마이클 멘들 Michael Mendl

이 영화는 1945년 당시 히틀러가 머물렀던 지하 벙커와 베를린 도심 전투 장면을 재현하기 위해, 그리고 독일의 거의 모든 유명 배우들을 캐스팅하기 위하여 최근 개봉한 독일영화 중 가장 많은 1천350만 유로(약 210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하여 독일내 400여개 스크린 확보하고 3백만 관객을 모으면서 2004년도 최고의 흥행 성공을 거두었다.

1942년 11월 동프러시아 라스텐부르크의 히틀러(Adolf Hitler)의 집무실에서 뭔헨에서 온 22세의 '트라우들 융게'(Traudl Junge ; 결혼전 이름 '트라우들 훔프스')는 여비서 중에 한명으로 채용된다.


<히틀러, 여비서와 함께한 마지막 3년>의 저자 '트라우들 융에'(Traudl Junge, 1920~2002)는 히틀러의 여비서로 3년을 근무한 실존인물이다.  바바리아 뮌헨에서 양조업을 하던 예비역 중위의 딸로 태어난 트라우들 융에는 이후 친위대 소위 한스 융에와 결혼하지만 남편은 1944년 전사한다.  종전후 잠시 소련군에 억류되었다 석방된 후 카바레총무, 비서, 잡지편집장 등에 종사하였다. 

영화에 등장하는 트라우들 융에의 실제 인터뷰 장면은 다큐멘터리 <블라인드 스폿 (Blind Spot), 2001년>에서 인용하였다.

1945년 4월 20일 히틀러(Adolf Hitler)의 56번째 생일에 소련 제5야전군 266사단 포병대의 포탄이 300만의 시민이 남아있는 베를린 중심가에 떨어지기 시작한다.

소련 주코프원수가 이끄는 약 130만명의 소련군 제1백러시아 방면군은 오데르-나이세강 방어선과 젤라우고지에서 이들을 저지하던 독일 방어군 - 제9공수사단 등-을 격파하며 베를린 코앞인 '뭔헤베르크' 까지 진출해 온 것이다..

히믈러는 미.영연합군에 휴전(항복)을 진행할 것을 계획한다...  독일군은 심리적으로 소련군에게 포로로 잡힌다는 것에 심한 공포감에 쌓여 있었다.  이는 결국 인과응보(因果應報)로 그들이 개전초기 러시아전역에서 저지른 잔인한 만행에 대한 보답을 받게 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전쟁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다, 슬라브와 게르만 양대민족의 거대한 인종말살투쟁인 것이다. 모든 독일인의 씨를 말리겠다고 벼르는 소련군을 피해 단 일분이라도 더 벼텨낼수록 더 많은 전우와 시민들이 서쪽의 미.영 점령지역으로 탈출할 시간을 벌 수 있다"


실제로 히틀러가 자살하기 직전 제3제국의 총통으로 임명한 독일해군 총사령관 '카알 되니츠'는 유럽 전역에 흩어져 싸우는 독일군 180만명중에서 러시아 전선에 있는 체코 60만, 오스트리아 43만, 유고 18만, 베를린 30만 병력을 최대한 서쪽으로 이동시켜 미.영 연합군에 항복을 시키려 노력하였다 (동프러시아와 라트비아의 30만명은 포기하고...)

'요세프 괴벨스' 베를린 대관구장관의 지시를 받는 6만명의 '국민돌격대'와 '히틀러유켄트'는 한심한 무기와 몰골이지만 그 기개만은 높았다..  '펠릭스 슈타이너' 중장은 이들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했지만 이들은 '판쩌파우스트(대전차포)'를 들고 소련군 전차에 맞섰다..

더구나 '패배주의적인 말'을 입에 담기만 해도 계급고하를 막론하고 현장에서 처형되는 살벌한 분위가가 계속되었고 SS대원들은 그 와중에서도 패배주의자, 탈주병, 이적행위자 등을 색출하여 마구잡이로 총살과 교수형을 시겼다..

히틀러는 위대한 독일제국을 만들고자 했다.. 문명의 중심도심 베를린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오래전에 잘못된 주사위를 던진 것이다...

그동안 여러 영화나 다큐멘터리, 책에서 히틀러(Adolf Hitler)을 보고 느끼고 상상해 왔지만 이 영화의 브루노 간츠(Bruno Ganz)의 연기는 정말 일품이었다.   몰락하는 독재자의 모습을 정말 잘 표현한 것 같다.

독재자는 인간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감이 있지만 실제 그들도 인간이고 또 그들이 직접 보지 않고 지시하여 저지른 비인간적인 행위와는 다른 감수성 예민한 모습을 갖고 있는 것을 역사에서 보게 되고 자신의 가족과 자신에 대한 사랑의 깊이가 행위에 비례해서 깊어짐을 보게 된다. 그는 이런 모습을 정말 잘 표현한 것 같다..

장군들은 현재 처한 베를린의 전황을 보고하며 '히틀러'가 베를린을 떠날 것을 종용하지만 히틀러는 "모든 병사들은 마지막 한사람까지 현재 몸담고 있는 참호안에서 최후를 맞으라. 이 전쟁에서 패배한다면 지구상에 게르만민족도 사라진다'고 계속된 저항을 독려한다.. 장군들은 점차 절망에 빠지며 미.영연합군이 있는 곳이나 새로운 출발을 위한 곳으로 옮겨가거나 가족과 함께 자살을 하기 시작한다..

독일은 1944년 말 베를린 국가청사 지하에 1936년 만든 방공호를 확장하여 더 깊고 더 크게 히틀러의 벙커를 만들었다.  작은 방 18개와 독자적인 식수, 전기, 공기보급체계를 갖추고 전화교환설비와 자체무선시설을 통해 외부와 통신을 하였다.  자체조리실과 주거공간에 필요한 저장공간을 갖고 있어 완전한 자급자족이 가능한 공간이었다.  히틀러는 1945년 1월 16일 이 벙커에 들어가 105일 동안 생활을 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1945년 4월 28일 오후 히틀러는 대전차포 '판쩌파우스트'로 소련군 전차 2대를 격파하는 전공을 세운 히틀러유켄트 "빌헬름 휴프너"라는 16세 소년에게 철십자훈장을 수여한다..  그는 이렇게 절망적인 베를린 시가전에 국가사회주의에 충성하는 많은 시민을 몰아세워 무수한 희생을 강요함으로써 그의 존재이유를 과시한다.. 이 또한 지도자로써 히틀러가 비난받아야 할 대목인 것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히틀러의 변덕으로 베를린 수비대장이 바뀌는 상황에서 '펠릭스 슈타이너' 중장은 나름대로 냉정한 이성으로 상황을 헤쳐나가려고 하지만 이미 전세는 그가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패배감에 쌓였지만 히틀러 앞에서 제대로 속내를 보이지 못하는 장군들은 베를린을 떠나 새로운 전선을 만들 것을 히틀러에게 종용하지만 히틀러의 광기는 더해만 간다.. 

히틀러의 지휘소에서 조차 고급장교들이 절망감을 술에 취하여 달래보려는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국가사회주의라는 이데올로기적인 이상과 다가오는 종말의 현실속에서 그들은 술이라도 있어 위안을 찾는 것일까!

절망감에 대한 반발인가! 현실에 대한 일시적인 도피인가! 일부 고급장교들은 포탄이 떨어지는 베를린 중심가에 환락의 파티를 벌인다... 아마도 앞으로 닥칠 고난에 대한 모든 보상을 이렇게 받으려는 양...

이제 베를린 함락은 눈앞에 닥쳤다...유서깊은 베를린 '브란데부르크' 문앞에 펄쳐진 '쾨니히스 플라츠'광장 앞까지 소련군이 밀어 닥치고 있다..

베를린 공방전을 위한 독일군 방어부대는 '베를린 근위대대'와 '바익셀집단군' 약 35만여명의 병력이었다.  제3기갑군과 제9군으로 구성된 '바익셀집단군'내의 가장 건실한 부대는 제18기갑척탄병과 무장친위대 '노르틀란트(Nordland)'사단이 구성되어 있는 "제61기갑군단"이었다.

이외에도 제20기갑척탄병사단, 제9낙하산사단, 뮌헤베르크(Muncheberg)사단, 프랑스인 무장친위대 샤를마뉴(Charlemagne)강습대대, 프랑스계 벨기에인으로 구성된 무장친위대 왈룬인(Div Wallonien)사단 등과 국민돌격대, 히틀러유겐트부대, 경찰, 대공포부대 등의 잡다한 병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

1945년 4월 28일 SS대원들이 국민돌격대원의 일원으로 전투를 하고 있던 베를린 시청의 하급관리 "발터 바그너"를 데려와 히틀러와 에바 브라운(Eva Braun) 결혼식의 주례로 세운다..  결혼식이 끝나고 축가를 부르기도 하지만 바그너는 전투현장으로 돌아가 전사한다.

히틀러는 의사에게서 고통없이 죽는 방법에 대해 조언을 듣는다.  전쟁 막바지에 국가사회주의당(나찌)의 모든 고위관료들에게 '청산가리 캡슐'이 지급되었다..

히틀러는 그의 집사인 부관에게 자신과 자신의 아내가 죽으면 소련군의 손에 시체가 넘어가는 치욕을 막기 위해 화장을 하여 줄 것을 부탁한다..

히틀러는 마지막으로 그들의 비서와 측근들과 작별을 나눈다...

1945년 4월 30일 히틀러는 그의 '발터 PP'권총을 이용하여, 에바 브라운은 청산가리 캐슙을 깨물어 자살을 한다.  자살 직후 그의 지휘부 앞에서 그의 참모들에 의해 화장되어진다.. 이 얼마나 허망한 독재자의 모습인가!...

히틀러의 지휘부의 요원들이 그곳을 탈출하기 위해 준비한다.. 일반 군인들과 합류하기 위해 그곳을 떠나는 것이다..

1945년 5월 1일 히틀러가 사망하자 소련군과 항복협상을 진행하던 베를린 수비대장 '바이틀링장군'은 "우리가 충성을 서약했던 총통께서 세상을 떠났다. 더 이상의 전투는 무의미한 희생을 연장시킬 뿐이다. 모든 독일군 장병은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고 방송한다.. 소련군은 이 녹음을 확성기를 통해 저항하는 뭰헤베르크 사단 장병들에게 방송하었다... 하지만 독일군은 쉽게 항복하지 못했다.. 그들이 소련군에게 포로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지 때문에....

베를린 대관구 장관인 '요세프 괴벨스'와 그의 부인은 그들이 사랑하는 6자녀를 청산가리 캡슐로 죽인 후 히틀러의 지휘소 앞에서 권총을 동반자살을 한다.. 그들의 시체 또한 대기하고 있던 SS 대원들에 의해 화장되어진다..

독일군 집결지로 모인 독일군 지휘부는 '트라우들 융게'(Traudl Junge) 등 여비서들의 탈출을 종용한다.. 그들이 붙잡혀 소련군에게 고초를 당하거나 히틀러에 대한 심문을 받을 것에 대한 배려일 것 이다..

기록에 의한다면 소련군은 거의 술에 취해 전투를 벌이며 베를린 시내에서 수도꼭지, 전구 등의 사소한 물건까지도 약탈을 하였다고 한다. 이들이 특히 좋아 한 것이 '우르(시계)'와 '크라우 콤(여자)'였다고 한다.. 

소련군 지휘부는 전투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이들의 약탈이나 만행을 묵인한 것 같다. 아마도 독일군이 개전초 러시아에서 저지른 만행에 대한 앙갚음으로 생각한 듯 하다.. 역시 인과응보이다..


그러고 보면 '일본'은 얄미울 정도이다.. 그들이 일본본토에서 미군과 전투를 벌였다면 그 희생은 대단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산업기반이 온전히 남아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히로시마의 원폭에 대한 아픔만을 생각하는데 그 아픔으로 어쩌면 일본본토 전체가 껶었을 더 큰 아픔을 보상받았다는 생각은 왜 안하는지!!

일부 독일군의 국가사회주의당(나찌)의 고위 장교들은 결사항전을 부르짓고 최후에 자살을 할 것을 결심한다.. 일부 장교들은 소련군의 진공에 자살을 하지만 대부분은 소련군의 포로가 되어 수용소에서 5~10년의 포로생활을 하게 된다. 그 이후 일부는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일부는 최근까지 생존하기도 한다..

'트라우들 융게'(Traudl Junge)는 SS대원들에게 패배주의자로 부모를 살해당한 '빌헬름 휴프너'의 도움으로 독일군 진영에 진공하는 소련군 사이를 헤집고 탈출을 한다. 

이제 이들은 새로운 삶을 향해 새로운 발걸음은 내딛게 되는 것이다..

베를린전투는 1945년 4월 16일 소련군 주코프장군의 제1벨로루시 전선군과 코네프장군의 제1우크라이나 전선군이 베를린 동북부와 동남부를 일제 공격하면서 시작된다. 소련군 전력은 250만명의 병력에 기갑차량 6,250대, 포 41,600문, 항공기 7,500대 등으로 구성되었고, 독일군 전력은 국민돌격대와 히틀러유겐트 중심의 100만명의 병력에 기갑차량 700대, 항공기 500대 등으로 구성되었다.

1945년 4월 20일 '히틀러의 생일' 소련 제1벨로루시 전선군의 포병부대가 베를린 시내에 최초의 포탄을 날렸다.  한편 제1우크라이나 전선군이 베를린 포위에 성공하고 4월 21일부터 베를린 시내에 돌입한다.  4월 29일 국회의사당과 총통관저 등 정부주요건물을 제외한 베를린 시내 전역이 소련군에 점령당한다.  그리고 4월 30일 베를린 국회의사당에 소련기가 내걸린다.  결국 독일군 베를린 방위사령관 헬무트 바이틀링 장군은 5월 2일 소련군에 공식적으로 항복한다.

베를린전투
에서 독일군은 전사 17만명, 부상 20만명, 포로 13만명 등 50만명 이상의 인명피해를 입었고 소련군은 전사자 8만명을 포함하여 36만명 이상의 인명피해와 기갑차량 2,000여대, 항공기 900여대의 피해를 입었다.

우리 영화가에서도 박정희의 종말을 그린 '그때 그사람들'처럼 이런 류의 영화에 대한 찬사와 비판이 공존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는 '감독'의 것이고, '관객'의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논픽션과 픽션의 어우러짐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시각'에 의해서 어떤 식으로든 다르게 보일 수 있다..

흔히 '사관'이라고 일컬어지는 '역사보기'는 그 보는 주체가 어떤 입장에 있느냐에 따라 그 모양새가 달라진다.  '식민사관'이라고 비판하는 역사인식도 같은 맥락에서 보고 비판해야 한다고 본다.. 즉, 그런 역사인식이 팽배할 수 밖에 없는 그 상황과 내용이 더 문제라는 것이다..
 
히틀러에 대한 영화가 '독일'인에 의해 그려진 점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이 또한 그런 역사보기의 한 과정으로 이해해야 할 듯 하다.. 우리는 미국영화에 빠져 '헐리우드 키드'로 자라져 왔다.  그 속에는 미국패권주의와 미국적 애국심으로 철철넘치는 역사인식에 우리도 모르게 빠져 들어 미국은 선이고 그 반대의 적은 악이라고 체득되는 시각을 갖게 되었다..
 
물론 '히틀러'에 대해 그런 입장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그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지닌 영화는 존재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도 우리 영화의 힘을 키워 나갈 수 있어야 우리 시각과 우리 역사인식으로 역사을 표현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사관을 심어 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 영화는 그런 측면에서 일견 성공한 측면이 있다.. 우선 히틀러에 대한 객관적인 접근에 성공했다고 본다.. 독재자는 인간적일 수있다.. '트라우들 융게'(Traudl Junge)가 마지막 인터뷰에서 이야기하듯 지도 한장에 그어진 선과 점, 말 한마디와 이데올로기의 광기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잊을 수 없는 고통속으로 밀어 넣는지 진정 몰랐을 수 있기에...
 
그들은 너무나 자기 중심적으로 그의 힘겨운 정신세계만이 고통이라고 느끼고 그 점에 한없이 인간적일 수 있다고 본다.. 그 점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잘못된 언행에 대한 모든 면죄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그 관점에서는 성공했다고 본다... 2008-08-16 (스티븐의 영화보기)

"나치즘은 보통 사람들의 운동이었다.  그리고 그에 따른 모든 파생물의 최종적인 결과는 극한상황에 처한 보통 사람들의 행위였다.  곤혼스럽지만 이것은 사실이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홀로코스트가 이례적인 사건이며, 따라서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히틀러가 문제시 되는 것은 그가 특수한 인물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와 함께있으며, 다른 사람들에 의해 다시 활성화될 수 있는 정치문화적 힘이 접합된 산물이기 때문이다" - 미국 칼럼리스트 '윌리엄 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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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2.30 12:19
    오늘 이라크의 후세인이 교수형을 당할 것 이라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전쟁범죄는 끔찍한 것이다. 최근에도 유럽의 한언저리에서 인종청소라는 만행이 자행되었을 정도로 전쟁을 사람들의 의식을 변화시킨다. 하지만 이전과는 달리 종교적인 신념까지 가세한 중동지역에서 후세인의 교수형이 적당할지는 모르겠다. 그 큰 불행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왠지 마음이 정확하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