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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영화話

미 해군특공대의 작전실패, '고독한 생존자' (Lone Survivor)

by 하승범 2008. 8. 1.
'고독한 생존자'<Lone Survivor: The Eyewitness Account of Operation Redwing and the Lost Heroes of SEAL Team 10> 미국 해군 특공대(United States Navy SEAL)가 아프가니스탄에서 군사 작전을 벌이다가 실패해서 부대 역사상 최대의 사망자를 낸 과정을 다룬 처참한 논픽션이다.

 
'고독한 생존자'는 저자 마커스 러트렐<Marcus Luttrell, 1975년생> 자신이다. 이 책은 러트렐이 자신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1인칭으로 풀어나간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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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thew G. Axelson, Daniel R. Healy, James Suh, Marcus Luttrell, Michael P. Murphy,

(앤드류 새먼(Andrew Salmon) 서평 수정편집) ; 러트렐의 생존 본능은 선천적이지만, 후천적이기도 하다. 그는 뱀과 악어가 출몰하는 텍사스의 깊숙한 시골에서 자랐다. 그의 가족은 말(馬) 목장을 운영하는, 극도로 애국주의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는 "하버드 법대에 가는 것보다 해군 특공대원이 되는 게 더 어렵다"는 말로 자신을 혹독하게 훈련시킨 교관들과 장차 요절할 운명인 전우들을 묘사한다. 다음 장면은 중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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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커스 러트렐<Marcus Luttrell>

기독교 신자인 러트렐은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리스트와의 투쟁을 자기 사명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광신도'와 '히스테리 환자들'과 맞서 싸우는데 열심이다. 몇 차례 임무를 수행한 뒤 러트렐의 팀은 이라크 바그다드를 떠나 알 카에다와 탈레반의 본거지인 아프가니스탄 산악지대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미군 내부의 전반적인 혼란이 극명하게 드러나지만, 그는 "작전 목적의 순수한 명확성이 우리에게 영감을 줬다"고 적고 있다.

2005년 6월 의무병(Hospital Corpsman)인 러트렐이 포함된 SEALs SDV Team 1, 4인조<Lieutenant Michael Murphy, Petty Officer 2nd Class Danny P. Dietz, Petty Officer 2nd Class Matthew G. Axelson>는 힌두쿠시(Hindu-Kush)에 은신한 테러리스트 지도자를 찾아내라는 명령을 받는다. 이 은신처는 16년 전 러시아 군이 주둔했다가 전멸당한 기지의 지척에 있다. 작전 초입부터 대원들은 불길한 전조를 느끼고, 각자 여분의 보급품을 챙겨 떠난다.

이들은 야간에 침투하다가 염소치기들에게 들킨다. 대원들은 염소치기들을 죽일지 말지 격론을 벌이다가 나중에 '진보적인 매체'들이 이 사실을 파헤쳐서 자기네에게 전범(戰犯) 딱지를 붙일까 봐 그냥 살려두기로 한다. 그로부터 두 시간 뒤 탈레반이 대원들을 습격했다.

이 책은 제1차 걸프전 때 영국 공군 특수부대원들이 이라크에서 작전을 벌이다 패퇴한 과정을 그린 논픽션 베스트셀러 '브라보 투 제로'를 연상시킨다. 그때에도 대원들은 가난한 이슬람 국가 후방에서 염소치기들에게 발각됐다. 대원들이 염소치기들을 고민하다 살려두기로 결정한 것도 마찬가지다. 두 경우 모두 대원들은 통신 두절로 고생하다가 전력이 우세한 적에게 습격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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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eutenant Michael P. Murphy

대원들은 총격전을 벌이다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지만, 등과 손과 배에 총을 맞고 한 명 한 명 끌어올려진다. 이때 숨진 러트렐의 절친한 전우<Michael P. Murphy, 2005년 6월 28일 전사>에겐 훗날 훈장(Medal of Honor)이 추서됐다. 러트렐 본인도 총상을 입고 다리에 파편이 잔뜩 박혔다. 와중에 구조대를 태운 헬기가 격추돼 16명이 사망한다.

러트렐에게 독자들이 동정을 느끼기 시작하는 곳이 바로 이 대목이다. 부상을 당한데다 구조의 희망까지 거의 사라진 지금, 러트렐은 사냥꾼이 아니라 사냥감이다. 놀랍게도, 그를 구해 준 것은 마을 주민들이었다.

이때부터 러트렐의 책은 방약무인한 무용담에서 벗어난다. 아프가니스탄 어린이들은 그에게 이슬람 기도문을 가르쳐주고 그가 통증으로 신음할 때 아편을 건넨다. 그는 고맙다는 뜻으로 시계를 건네지만 그들은 사양한다. 마을 사람들은 고대부터 내려오는 부족 법에 따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탈레반에게서 러트렐을 숨겨줬다. "사사로운 이익이 아니라, 여러 세대를 거쳐 내려온 명예의 감각을 기리기 위한" 행위였다. 엿새 뒤 그는 구조됐다. 고향에서 성대한 환영을 받고 백악관도 방문하는 영예를 누리지만, 그 기쁨은 전우들의 유족을 만나면서 빛이 바랜다.

Danny P. Dietz

이 책은 단순한 모험담이 아니다. '고독한 생존자'는 핵심적인 질문을 던진다. 민주국가의 병사들이 대체 얼만큼 무자비하게 테러와의 전쟁에 임해야 할까? 나는 서방 기자지만, 스스로가 '진보 진영'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러트렐이 염소치기들을 살려둔 것은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믿는다.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을 죽이지 않으려고 위험을 무릅쓴 이 고결한 행동이 러트렐 본인에겐 후회의 원천이 됐다는 것이 아이러니컬하다. 러트렐은 "그 결정이야말로 내 평생 가장 멍청하고, 남부스럽고(southern-fried·미국 남부 특유의 감상적이고 촌스러운 정서가 배어있다는 뜻), 약해 빠진 결정이었다"고 회고한다.

테러리스트들은 무죄한 민간인을 학살하지만, 그들에 맞서는 민주국가는 도덕적 우월성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의도적이고 명백한 살인 행위를 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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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thew G. Axelson

'고독한 생존자'와 '브라보 투 제로' 두 권을 읽고 나면, 특수부대원들이 똑같은 상황에서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지 궁금해진다. 내 경험으로 미루어 서구 병사들은 대개 염소치기들을 살려두기로 할 것이다. 그러나 네오콘 블로그에 뜬 댓글들은 정반대 의견을 담고 있다. 미국 우익들은 러트렐의 책을 한껏 추켜 세우지만, 진보 진영은 저자의 거친 문장과 같은 텍사스 출신인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대한 지지, "나는 옳다"는 남성주의적 행태에 숨이 턱 막힐지 모른다. 그러나 조지 오웰이 일찍이 적었듯 "사람들이 밤에 평화롭게 잠드는 것은 그들을 위해 폭력을 불사할 준비가 되어 있는 거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인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의 가치가 바로 거기 있다.

뉴욕에서든 런던에서든 서울에서든 전문직 종사자들은 테러리스트들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가는 일 없이 자유 무역과 민주주의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먼 땅에서 벌어지는 '테러와의 전쟁'에 어떤 도덕적 해이와 인명 피해가 깃들어 있는지 얼마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러트렐은 전역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이 책을 영화화하는 댓가로 200만 달러를 지불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도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인 사투(死鬪)의 기억에 짓눌려 있다. 그는 지금도 일요일마다 전우의 유족들에게 안부 전화를 건다.  <영국 더 타임스지(紙), 미국 워싱턴 타임스지(紙) 서울 특파원 앤드류 새먼(Andrew Sa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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