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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Letters From Iwo Jima) 2006년 미국

2차 세계대전-태평양

by 하승범 위드아띠 2010. 3. 30.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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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Letters From Iwo Jima) 2006년 미국 

이오지마 총사령과 쿠리바야시 타다미찌(栗林忠道, くりばやし ただみち, Kuribayashi Tadamichi, 1891.7.7~1945.3.26)장군의 서간문를 기반으로 태평양전쟁 최대 격전지였던 이오지마 (IwoJima, 유황도 硫黃島, イオジマ)전투를 무대로 일본군 병사들의 시점을 통해 당시 전투상황을 그린 전쟁영화

# 추천 ;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散るぞ悲しき , 硫黃島からの手紙 / 栗林忠道)
            (가케하시 쿠미코 지음, 신은혜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2007)

감독 : 클린트 이스트우드 Clint Eastwood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다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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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깃발 (Flags Of Our Fathers) 2006년 미국

출연 : 와타나베 켄 Ken Watanabe 니노미야 카즈나리 Kazunari Ninomiya 이하라 츠요시 Tsuyoshi Ihara 카세 료 Ryo Kase 나카무라 시도 Shido Nakamura 와타나베 히로시 Hiroshi Watanabe 반도 타쿠미 Takumi Bando 마츠자키 유키 Yuki Matsuzaki 야마구치 타카시 Takashi Yamaguchi 오자키 에이지로 Eijiro Ozaki 유우키 나에 Nae Yuuki 사카가미 노부마사 Nobumasa Sakag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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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6월 미국 유학파 일본군
'쿠리바야시 타다미찌 (栗林忠道, Kuribayashi Tadamichi)' 육군중장은 일본 남동쪽 오가사와라제도의 수비를 강화하기 위해 편성된 제109사단장으로 이오지마에 부임한다.

# 쿠리바야시중장(General Tadamichi Kuribayashi)은 1941년 9월 제23군 (난시파견군) 참모장으로 광동에 부임하여 41년 12월 홍콩공략에 참전하였다.  이후 1943년 6월 도쿄방위를 책임지는 루스근위제2사단장으로 부임하였다. 1944년 부하의 화재사건에 책임을 지고 사단장을 사임하고 동북군 사령부 소속으로 재임하다가 5월 27일 제109사단장으로 발령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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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중인 아내와 빵집을 운영하며 모든 것을 군부에 수탈당하다가 입대한 사이고(Saigo)와 헌병으로 복무하던 중 주민들에 대한 핍박을 강요당하다가 그 명령을 지키지 않은 이유로 이오지마의 주둔부대에 재배치된 시미즈(Shimizu)도 본토와 연합함대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그 섬에서 옥쇄를 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괴로워하면서도 진지구축과 방어훈련에 참가하고 있다.  이 영화는 사이고(Saigo)를 통해 또 하나의 시선으로 의 이오지마 전투를 이해하려고 한다.

# 쿠리바야시중장(General Tadamichi Kuribayashi)은 "사단장 주의사항"을 통해 장교 역시 일반 병사와 같은 것을 먹으라고 지시할 정도로 계급에 상관없이 모든 장병들은 불편함을 함께 나눠야 하고 간부는 부하들의 영양상태를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합리적인 '리더십'을 통해 부하들의 사기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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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바야시중장은 대본영(大本營)에 지속적으로 지원을 요청하지만, 대본영(大本營)은 이오지마를 사수할 것을 명령한다. 그 명령은 적과 싸워 승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스기 해군제독(Admiral Ohsugi) 등 일단의 장교들은 그런 쿠리바야시중장의 생각과는 달리 옥쇄를 각오하고 본토에 별도의 지원요청을 하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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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은 조직적인 공습을 감행하며 일본군의 전력을 약화시키고 심리적인 위축감을 강화시킨다.

# 쿠리바야시중장이 이오지마에 부임한 1944년 6월에도 6월 15일, 16일, 24일에 걸쳐 미군의 공습을 받았다고 한다.  이 3일의 공습으로 일본군은 100여대의 항공기를 잃었다고 한다.  실제 미군이 이오지마에 상륙한 것은 8개월 후인  1945년 2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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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의 상륙이
임박해지면서 쿠리바야시중장은 약 2만명의 휘하 장병들에게 '따뜻한 정을 나누던 지휘관'이었지만 그는 '가능한 한 오랜 시간 동안 '지지 않는 것', 자신의 목숨을 걸고 마지막 피 한방울까지 다 사용하는 "게릴라전"을 할 것'을 명령한다. 그는 '만세돌격'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최후의 한 사람까지도' 미군을 괴롭힌다는 감투서약을 지킬 것을 요구하였다

"우리는 최후의 순간까지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죽지마라! 마지막까지 살아서 싸워라!  신념을 가지고 자신을 믿어라" - 栗林忠道


# '쿠리바야시 타다미찌(栗林忠道)'육군중장의 이오지마 감투서약

일. 우리는 전력을 다해 지켜낸다.
이. 우리는 폭약을 안고 적군의 전차로 돌진해 그것을 분쇄한다
삼. 우리는 앞장서서 적중에 들어가 적을 몰살한다
사. 우리는 일발명중시켜 적을 쓰러뜨린다.
오. 우리는 10명의 적을 쓰러뜨리지 않으면 죽어도 죽지 못한다
육. 우리는 마지막 한명이 되더라도 '게릴라'로 남아 적을 혼란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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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70여일간 계속된 포격으로 일본군의 괴멸을 노린 미군은 1945년 2월 19일, 미군 제3,4,5해병사단을 주력으로 약 8만명의 미군이 상륙시킨다.  1944년 6월 쿠리바야시중장 부임이후 해안방어개념을 포기하고 '지구전'과 '해안포기 후방배치' 중심의 수비방침으로 변경하여 모든 진지를 지하로 구축한다.  초기 미군이 용이하게 해안에 상륙한 이후 내륙으로 들어오면서 일본군의 강력한 저항에 고전을 겪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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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바야시중장의 간곡한 명령에도 불구하고 스리바찌산을 지키고 있던 아다치중령(Colonel Adachi)를 비롯한 일단의 부대원들의 지휘관들의 명령에 따라 만세삼창을 외치곤 수류탄과 권총으로 자결을 감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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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일선 지휘관들은 쿠리바야시중장의 철수명령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만세돌격'을 주장하거나 감행하고, 심지어 상부명령에 따라 철수한 병사들을 참수하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휘관들은 쿠리바야시중장의 의도에 따라 병사들을 철수시켜 최후까지 항전하도록 독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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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바찌산에서  아다치중령(Colonel Adachi)의 수비부대에서 철수하여 올림픽 승마 금메달리스트출신의 니시 바론중령(Baron Nishi)의 부대에 합류했던 사이고(Saigo)와 시미즈(Shimizu)는 생존을 위해 미군에 항복하기로 한다.  그러나 시미즈(Shimizu)만 탈주하여 미군에 항복한다.  그러나 포로처리에 불편함을 느낀 미군병사에 의해 시미즈(Shimizu)는 사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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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바야시중장은 1945년 3월 17일 총공격을 감행하기 위해 계급장과 중요서류, 사물 등을 소각하는 명령을 사단장병들에 내린다.  그로부터 미군의 포위망이 느슨해 지는 시기를 찾아 3월 25일 "나는 항상 제군들의 선두에 있다"라는 훈사를 하고 육해군을 합친 약 400여명의 병력과 함께 미국 해병대와 육군항공대 주둔지를 습격한다.  이는 만세돌격이 아니고 질서정연한 기습공격이였다.

# 일본군은 일반적으로 마지막 총공세을 할 때 총지휘관은 진지 후방에서 할복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쿠리바야시중장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한다.  육상자위대 간부학교의 이오지마 현지연수용자료에는 "사단장이 직접 돌격한 예는 일본군 전쟁역사상 전례가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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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바야시중장은 공격 중에 대퇴부에 총상을 입고  사이고(Saigo)가 지켜보는 가운데 권총으로 자결한다.  실제 역사적으로는 그의 죽음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미군과 일본군 각각의 군사문화가 가진 대조적 측면이 인종적 증오심을 키워 무자비한 전쟁을 정당화하였다.  "태평양전쟁은 유럽에서의 전쟁과 달리 상호간의 증오와 고정된 인식이 큰 영향을 미친 '인종전쟁 (Race War)'이었다" (Ronald Takaki) ; (출처 ; '배틀, 전쟁의 문화사 (Battle) - 존 린 (John A. Lynn) 청어람미디어 2006') 재인용.

이 영화에서는 '태평양전쟁'에서 미군과 일본군이 서로 상대방의 가치관과 행동양식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으며, 그로 인해 얼마나 '인종주의적 인시과 적대감'을 갖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전투에 참전한 미군들은 유럽에서의 적인 독일군에 대해서는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인간을 죽였다고 생각했지만, 일본군에 대해서는 바퀴벌레나 쥐와 마찬가지로 혐오스러운 존재로 인식했다.  영화에서 처럼 미군은 특별한 상부의 명령이 없는 한 포로를 생포하기 않고 사살했고, 비무장의 일본인(또는 한국인) 노무자들에 대해서도 서슴없이 학살을 자행했다고 한다. 

이 영화는 미국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정서를 고려하여 수입, 상영되지 못했다.  하지만 역사속에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정치적' '이념적' 이슈와 함께 그 속에서 고통받은 '사람'들에 대한 관심도 있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는 이 영화를 바라보는 성숙함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전쟁 속에 놓인 인간들은 작렬한 폭탄속에서 동일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감독을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전쟁터에서 인간은 한편으로 비인륜적으로 변할 수 있으며 생존이나 승리를 위해 자신의 신념조차도 바꾸어야 할 때도 있다.  이 영화는 그런 것을 잘 보여주는 수작이다.  - 스티븐의 영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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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황도의 모래 (Sands Of Iwo Jima) 1949년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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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3.31 17:12
    우리나라에 상영되지 못한게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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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4.01 16:53
    어제 전화주셨는데.. 답도 못드렸네요... 요즘 이 영화처럼 전쟁입니다!
    오늘 종일 자리 안 계시던데... 언제 메신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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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21 05:23
    대일본제국 시절이 그립군요 천노텐황 반타이!